천직으로 알고 수십년 다니던 직장
나이 들어 하루아침에 옷을 벗고
무위도식 백수건달
마루나 눈칫밥 얻어먹고
지나온 세월이 10년이라네
마누라 차려준 밥
한 끼 먹으면 일식이요
두 끼 먹으면 이식이요
세 끼 다 찾아 먹으면 삼식이라 부른다는데
처음에야
삼식이까지는 아니었는데
흐른 세월이 얼마라고
지금에야 찾아주는 사람 줄어들고
잦은 모임도 뜸해지니
밖에서 끼니 때울 일 없어
삼식이라 불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네
그러던 어느날
성당모임 다녀온 마누라
초봄에 성지순례
자매님들만 가기로 했다고 내게 통보하는데
무슨 말씀을 섭하게…
거기가 어디라고
수만리 이국땅에 홀홀단신
마누라 혼자 보내다니 그럴 수는 없지
나도 가겠다고
시간을 두고 끈질긴 반 압박 반 회유를 하자
난감해 하던 우리 마누라
같이 가자고 통 큰 결단을 내려주어
순례길 함께하게 되었다네
그래
성지순례가 시작한지
2~3일째 되던 버스 속에서
일행 순례객의 인사와 자기소개가 있었던 날
우리 마누라 왈
“이번 순례에 우리성당 자매님만 오기로 했는데 남편이 껌 딱지처럼 따라붙어 같이 오게 됐다”고 소개를 하자
조용하던 버스 안이 웃음과 박수가 터져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고
놀랜 버스가 곤두박질 칠 뻔 했다네
졸지에 껌 딱지가 되어버린 나
홍당무가 되어 한동안 고개를 쳐들 수가 없었고
순례길 내내 나를 보고
부러움인지 비웃음인지
의미 모를 야릇한 웃음을 보내는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잔득 구겨진 삼식이 채면에
껌 딱지라고 해서 더 구겨질 일 없으니
순례를 통하여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과분하고
어느 때보다 행복했으면 그만이지
뭘 더 바라겠는가
그래도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더 강력한 접착제가 되어
주저 없이 따라 나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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