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떠있던 섬을 육지로 만들어준 위풍도 당당하게 쭉 뻗은 강화대교를 건너 산허리를 돌아 야트막한 동산에 위치한 성지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정돈된 건물이 우선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바다를 안고 앉아 해안을 돌아 몰아온 짠바람을 소나무가 막아주고 벚꽃 터널 아래 깔아놓은 꽃잎 카펫, 수만 마리의 나비가 한꺼번에 비래하는 꽃보라가 황홀하기까지한 아름다운 곳 이곳이 ‘갑곶순교성지’이다!
산기슭에 세워진 14처 십자가의 길을 따라 한 처 한 처 십자가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나는 성모님과 함께 소박한 성지순례를 떠난다. 곳곳에 놓여있는 석등에서 산바람을 타고 안개처럼 감겨오는 성가를 헤집고 십사가의 길을 걸어 나오면 부활하신 아드님을 마주한 성모님이 두 팔을 벌려 반긴다.
산새가 노래하고, 청설모가 재주를 부리는 묵주의 길을 따라 운치 있는 나무층계를 올라 순교자들의 행적증언자 박성집 묘지에 참배하고, 높직이 세워진 대형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이 했음직한 피 묻은 예수님 발에 입맞춤하고, ‘우윤집·최순복·박상손’ 세분 순교 삼위비 앞에서 이 세상 모든 냉담자들을 위해 중재기도를 부탁하며 촛불 하나 밟히고 돌아서서, 겟세마니 동산 기도하시는 예수님 앞에 성지까지 이고 지고 온 모든 근심걱정 다 풀어놓고 주님과 독대를 한다. 다만, 주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내말만 하는 그것이 문제다. 그러나 주님은 늘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 알았다고…. 이것이 내가 매일하는 성지순례다. 이보다 더 좋은 성지순례가 또 있을까 싶다.
사실 설익은 나의 신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예수님의 고통에 대한 애절함은 미비 하지만, 아드님의 고통을 지켜보는 어머니 마음은 조금은, 아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아 성모님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은 나에겐 가슴 뭉클한 묵상 길이 된다. 또 산새들의 음악콘서트가 열리는 멋진 묵상 벤치에 청중이 되어 앉아본다. 소나무에 꽃잎 떨어지는 소리. 바다 위 물새는 마냥 즐겁단다.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로우며,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곳. 여기가 갑곶순교성지다. 여기에 덤으로 전담신부님의 명 강론을 들으며 참례하는 미사는 금상첨화다.
이 은혜로운 성지미사를 매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은총일 것이다.
2년 전, 남편의 건강을 걱정해 이곳으로 올 수 있게 이끌어 준 수호천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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