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정착 3년 만에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있었을 때 심리적 불안으로 자살기도를 두 번이나 했었습니다. 그때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와 고향, 가짜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등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한국 정착 3년 만에 또다시 타향살이 1년을 하게 되었을 때 사비로 유학경비를 충당해야 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가가 비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경제적 부담 탓에 힘든 유학생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솔직히 거의 거지처럼 먹고 살다시피 하니, 평소 왜소한 체격인 저였기에 2개월 만에 체중이 2kg씩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5kg 이상이 내려가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불하고는 돈이 부족하기에 체제비를 줄이려면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저는 ‘내가 왜 나이 서른일곱살에 이 고생을 하는 거지? 뭘 그렇게 크게 성공하겠다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 거지?’하면서 혼자 울며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러시아로 떠날 때 본당 신부님이 주신 묵주와 주님 상본을 보면서 문득 ‘내가 왜 이러는가? 난 주님의 자녀지, 주님이 나를 굽어 살피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울고만 있는거야?’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수소문하여 현지 한인성당을 찾아갔습니다. 몇 개월 만에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는데,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매 주일을 지키며 평소에도 자주 성당을 찾아가 주님과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전 깨달았습니다. 제게 주님이 계시는 한 난 언제나 외롭지 않다는 것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저에게는 북한이탈주민 대학생 대표로 미국을 방문할 기회도 주어졌고, 지금은 유학을 떠나기 전 약속한대로 본당 성가대에 소속되어 주님을 열심히 찬송하는 신자가 됐습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제게는 늘 좋은 일들이 생기고, 어쩌다 힘들 때마다 주님과 대화하면서 남편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받아들이신다.’(시편 6,10)
한국에 정착한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세월 어떤 면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저희 부부에게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저와 요셉씨는 힘들 적마다 신앙을 통해 이겨내곤 한답니다. 아직 주님을 섬기기에 너무나 부족한 저지만 저는 늘 주일 미사 때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주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가정이 되도록 은총 주소서”
주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저의 부부는 지난 7년 동안 잘 정착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바로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을 때 주님께서 이미 저를 내려다보시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삶은 주님 안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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