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성당에 다니는 학생 수십 명이 현재 침몰된 세월호에서 사망했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아비규환, 비통, 절규….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도 단원고 학생들과 저녁마다 촛불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명령이다 돌아와라’라고 외치면서요. 아파요, 너무 아픕니다.” 지난 4월 18일 한 신자분에게 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이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지난 16일 이후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큰 슬픔과 비탄에 빠졌다. 인천을 떠나 제주도를 향하던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무고한 수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희생자들 중에 상당수가 제주도 수학여행을 위해 배에 승선한 고등학생들이었다. 피지도 못한 채 흩어져버린 꽃잎을 바라보는 것처럼 슬프고 너무 안타깝다. 내 아이의 생환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 아픔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이번에 침몰한건 세월호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도, 배려심도, 자존심도 저 바다 밑으로 내던져졌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믿음’의 가치가 끝없이 침몰해 버렸다. 안타깝게도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나는 것은 불신 그 자체이다. 자리를 지키라는 승무원의 안내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들은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특히 순진하고 착한 우리 학생들이 너무 많이 세상을 떠나게 됐다. 어느 선생님은 더 이상 학생들에게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지켜줘야 할 어른들은 과연 그 책임을 다했을까.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 구조의 의무를 지닌 선장과 승무원들이 이를 어기면서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골든 타임’을 놓쳐 버렸다.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선장은 일찌감치 배를 버리고 탈출했고, 선장과 함께 가장 먼저 구조선에 오른 승무원들은 수백 명의 인명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무책임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모습을 가리켜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곪을 대로 곪다가 결국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나보다 약한 이를 보듬고 돌보려는 마음이 부재한 결과, 우리 아이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젊은이들에게 차마 고개를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재물을 우선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우리 생활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세월호 사고는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을 입증하는 최악의 사고가 됐다. 이 와중에 다른 이의 고통을 이용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심지어 돈벌이의 수단을 찾는 이들의 행태는 우리를 더 허망하게 만든다.
남을 돌보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세상,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고 불신과 의심과 반목이 지배하는 사회…. 그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 사회에 미래는 없다. 세월호의 침몰을 보면서 자연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한 가닥 위로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구호품을 보내고, 진심으로 아픔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차갑고 어두운 바다를 목숨을 걸고 수없이 들락거리며 구조를 하는 분들의 수고가 눈물나게 고맙다. 그래서 우리사회에는 아직 미래가 있다.
우리 교회는 이 아픔을 함께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깊이 생각하여 실천해야 할 것이다. 가장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번 희생자들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할까? “이런 끔직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재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재난에서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또다른 참사를 겪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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