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세월호 사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주간 많은 사람이 여러 말을 해왔는데 굳이 나까지 한마디 보태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갑갑한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이 시대 우리에게 너무 치명적인 충격을 주고 있어 끝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충격이 큰 것은 이번 사고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도 이번과 같은 큰 사고를 겪었고, 그때마다 역시 많은 사람이 이런 저런 비판과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저 그 순간뿐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바꾸어보자”고 매번 별렀지만 너무나 똑같은 양상의 사고가 또다시 반복되었다. 비판과 대책으로 나오는 말들도 이미 들어 아는 내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크게 충격 받고, 심지어 “더 이상 기대하고 싶지도 않다”는 절망적인 비관을 내뱉기도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크게 분노하는 것은 이번 사고에서 속속 드러난 어처구니없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잃어버린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서 분노를 넘어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탄식이 흘러나온다.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가장 깊은 면모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여러 사람들의 추한 모습은 사람에 대한 근본적 회의마저 느끼게 한다.
이번과 같은 큰 사고를 겪는 시기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선택의 갈림길을 던져준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비관이냐 낙관이냐, 절망이냐 희망이냐, 회의냐 믿음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세월호 사고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문제 지적은 상당 부분 우리를 비관과 절망과 회의 쪽으로 이끌어가는 듯하다. 사고 수습과 대책 마련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들으면서도 앞으로 변화되리라는 기대보다는 절망과 탄식만 나온다. 그동안 쌓여온 두텁고 고질적인 폐단이 양파껍질 벗겨내듯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뼈아픈 비판과 문제 지적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희망과 믿음의 이야기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 냉철한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도 필요하지만 희망과 믿음 역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한 가지이다.
이렇게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 찾기를 시작해야 할까?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은 그저 막연히 그래야 한다거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감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두텁고 고질적인 폐단에 대처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안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깊은 성찰에서 나온 진리이다. 결국 보다 근원적인 방안은 사람의 변화이다. 사람다움의 회복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적 가치와 신념을 내면에 갖출 때 이번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사고 자체를 아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고 상황에서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분노하는 일은 없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의 변화가 분명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다운 가치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순간 우리를 허탈한 분노에 빠지게 한 추한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사람다운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끝까지 승객들과 함께 했던 여승무원,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 친구들을 위해 침몰하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간 학생, “저희 유가족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기 바란다”는 의연한 말과 함께 성금은 모두 장학금으로 쓰겠다고 밝힌 유가족들, 가능한 드러나지 않게 모습을 낮추며 굳은 일에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 몇 주 동안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하며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
이들에게서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라는 진리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보며 느낀 분노보다 사람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느끼는 따듯한 희망이 훨씬 힘 있고 지속적인 울림을 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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