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는 6월만 되면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 3년여 전 세상을 떠난 부친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고 했다. 특히 입관식 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냥 뚝뚝 눈물이 흐른단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는데, 목이 메인 상태이기도 했지만 가슴에 쌓인 말들이 입 안에서만 뱅뱅 돌아 겨우 ‘아빠 미안’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사랑해요’ ‘아빠 딸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외롭게 해드려 죄송해요’ ‘잘하려고 했는데 너무 부족했어요. 용서 하세요’ 등 정작 해야 할 말들은 꺼내지도 못했다는 친구는 이후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살아생전에 자주 못 해드린 말이어서 늘 가슴에 돌처럼 무거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어떻게 그 순간에 그렇게 말문이 막힐 수 있느냐”며 “부모님 살아 실 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디 부모님뿐일까,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이라는 이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공기’의 중요성처럼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의 기본을 지켜주는 소중한 밑받침일터.
세월호 참사 이후 일명 ‘가족애 신드롬(증후군)’이 한국사회에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자리에 앉아 얼굴을 맞대며 밥 한 끼 먹기 힘들만큼 현실에 쫓겨 지내던 한국사회 가정들이 ‘가족’의 의미를 찾고, 가족에 대한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보도에 따르면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소비는 늘어나고 있고, 애도 분위기로 회식은 자제 되고 있지만, 가족 단위 외식은 증가했다고 한다. 기업과 학생들의 단체여행도 대다수 취소된 상황서 가족 단위 국내외 여행은 눈에 띄게 신장된 모습이란다.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가족 중심 소비가 증가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지진과 쓰나미 등으로 아픔을 겪었던 일본에서도 그 상처를 통해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시선이 생겨났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이기적이고 정형화됐던 사회 구성원들이 이웃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 대지진 직후라는 것이다.
한 소셜커머스는 지난 어버이날을 맞아서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주 동안 애인이나 친구 부모와 통화하는 시간을 조사했다. 결과가 흥미롭다. 애인이나 친구와 통화하는 시간은 각각 140분, 97분인데 반해 부모와 통화하는 시간은 평균 6분이었다. 또 자식들의 ‘사랑한다’ 표현에 ‘돈 필요해?’ 답이 돌아올 정도로 부모 자녀 간 ‘사랑’이라는 애정 표현은 ‘낯선’것임이 드러났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 청소년백서’ 및 ‘청소년 가치관 국제비교조사’에 따를 때 가족 중 ‘주로 아빠와 대화한다는 청소년 비율’이 8.0%(여자 청소년은 5.2%)에 불과하다. 대화주제는 ‘학업 및 진로문제’에 편중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9.11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나, 세월호 참사 속에서 희생된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가족에게 전한 이야기는 ‘사랑한다’가 대부분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고 했던 아이들의 말마디는 계속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시를 통해 ‘사랑한다’는 말을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이라고 했다. 참사가 빚어진지 한 달 여가 흐른 시점이지만, 여전히 사회전반에 불신과 부도덕으로 인한 절망스런 무력함이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죄 없이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미안한 마음이 그저 그 ‘마음’으로 끝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족들 안에서부터 ‘사랑한다’는 말이 더욱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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