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니께.
추운 날씨 거동하시는데 걱정되고 강건하신지 궁금합니다. 이제는 봄기운이 스며든다는 청명절기도 지나고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찾아뵙고 큰절이라도 올려야 되는데, 저 넷째는 영어의 몸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마음뿐입니다.
어머니는 종종 저에게 옛이야기를 해주셨지요. 6·25 때 일본으로 피난도 갔다 왔다. 1950년도에 온양 시내에서 상공장 하시던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셔 간암으로 상공장을 그만두고 요양차 시골로 이사하게 됐다고. 너는 절대 술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어머니 계시는 곳, 시내에서 4㎞ 떨어진 중학교 다닐 때 통학버스 비포장도로 달리면 차 따라 창으로 흙먼지 들어오고, 맑은 날 자전거로 통학할 때 일찍 아침밥 챙겨주시던 어머니.
천안에서 자취하던 고등학생 시절. 주말에 집에 와 시키는 농사일 거 들고, 월요일 아침 일찍 한 주 동안 먹을 반찬 보따리와 책가방 들고 떠날 때면 ‘꼭 밥 해먹고, 학교다녀라’ 하시던 어머니. 피곤해하는 저의 뒷모습을 보시고 다음 주에는 오지말아라 하시던 어머니. 그래도 왜 토요일만 되면 집에 가고 싶어 했는지.
1974년도 봄 집 앞마당에서 동생하고 소 여물 썰고 있는데 조카들하고 뛰놀던 강아지가 저의 팔꿈치를 툭 치는 바람에 볏짚 자르던 작두에 저의 중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있었지요. 이때 온양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잘린 손가락을 사료 포대 종이에 싸서 4㎞나 떨어진 병원 응급실로 달려오셔서 붙여 달라고 큰소리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5남 2녀, 어려운 가정형편에 형님 누님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직장 찾아 뿔뿔이 헤어지게 되고, 어린 저와 동생은 큰 형님과 어머니 사랑받으며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었지요.
어머니 이제는 7남매 잘 키워 주셨고 형제들 간 우애 좋고 잘들 살고 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아들딸들 집에 돌아다니며 계시라고 하면 답답해서 도시에는 못 있겠다고 시골 큰 형님댁만 고집하고 계시면서 3, 4년 전에만 해도 저 넷째는 아니 오냐 하고 찾으시던 어머니.
한 달에 두세 번씩 서울에서 왔다갔다하던 저의 농장. 요즘은 빈 콘테이너만 있는데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수시로 다녀오신다는 말을 전해 들을때마다 전 괴롭습니다.
심한 차 멀미 탓에 어머니는 외할머니 생신이나 가족들의 생일을 챙기러 70리 길을 걸어 다니셨던 어머니.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외할머니를 찾아다니셨던 어머니처럼 하지 못하는 이 자식. 어머니 아흔 여섯 번의 생신을 맞이하는 동안 몇 번의 생신을 제가 챙겨드렸는지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찾아뵙고 싶어도 이 높은 담 때문에 뵙지 못하고, 이제는 전화해도 듣지 못하는 어머니.
어머니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어도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는 아들, 여기에서 죄책감과 회한에 너무도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건강히 5년 후에 뵈러 달려가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넷째 아들 마카리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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