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 나 역시도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 TV드라마가 <정도전>이다. 드라마는 아무래도 작가의 구상이나 해석이 곁들여 있어 역사적 사실 그대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사극의 매력이다. 역사 공부는 역사적 인물들의 이런저런 선택과 행동을 보며 지금의 우리를 비추어보고, 앞으로의 우리를 내다볼 수 있게 해준다.
드라마를 보며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고려 말의 혼란과 격동 상황 속에서 정도전과 정몽주가 보여준 판단과 행동이다. 같은 시대 상황을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기준에서의 선택을 한다. 정도전은 고려라고 하는 기존 질서가 지닌 모순적 한계를 절감하고 완전히 판을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다. 정몽주는 당시 상황이 여러 모순과 폐단을 지니고 있어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고려 왕조라는 기본 바탕마저 뒤집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두 사람의 판단과 선택에 관해서는 당시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결코 한쪽 측면에서의 평가에 치우칠 수 없고, 두 사람 중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 단정할 수 없다. 정도전은 자신이 속해 있던 고려에 대한 충절이라는 기준에서는 역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을 위한 이상적인 세상을 만든다는 기준에서는 진정성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정몽주는 아무리 못나고 문제 있는 나라라도 끝까지 그 나라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옹호하고 개혁을 미진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수적 기득권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준에서든 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다양한 기준들이 공존하고 대립적인 가치들이 충돌하는 현대 삶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문제가 한층 치열해졌다. 어느 길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같은 상황에 대해서 누구는 이것이 옳다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것이 옳다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갈등과 혼란 역시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 기준들의 충돌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결책을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치 기준들이 충돌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 측면 또는 개별 상황에만 해당하는 부분적 가치일 뿐인데, 이를 전체적인 모든 상황에 통하는 기준으로 절대화시키려 할 때 당연히 다른 부분적 가치들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기준이 다른 누군가의 가치 기준과 충돌할 때, 사실 그때야말로 내가 옳다고 판단한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성찰해야 할 때이다. 이런 성찰이 이루어지 못할 때 여전히 나의 가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라 착각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한 신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과 정몽주가 서로 자신의 기준을 밀어붙이기 위해 온갖 정치적 계략을 동원하고 이 마저도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정당화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의 판단과 가치 기준이 고집스러운 편견이나 독단으로 굳어버리지 않도록 성찰하기 위해 ‘신앙’이 필요하다.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가 표현했듯이 신앙은 “초월을 향한 전인격적 응답”이다. 초월적 존재 혹은 진리에 온전히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월적 진리에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초월적 진리 안에서의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포함한다. 절대적이고 무한한 초월적 진리 앞에서 상대적이고 유한한 나 자신의 편견이나 독단을 해체시켜버리는 자기성찰이다. 자기성찰을 통해 나 중심의 틀을 깨어버릴 때 온전히 초월적 진리를 따르는 삶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이 충돌하며 선택의 혼란이 극심한 현대 사회, 궁극적 진리를 확인하고 그 진리 안에서 부단히 자기성찰을 이루는 진정한 신앙이 절실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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