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그리 쉽게 동독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서독 정권은 물론 주민들도 통일에 대한 열정적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독일은 어느 날 다가온 기회를 통일의 계기로 삼았으며, 지금의 독일은 유럽의 리더이자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독일 통일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독일 통일은 철저히,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하게 준비되었다”이다. 1945년 패전 이후 독일은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버린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종전 30년도 채 되기 전에 뮌헨올림픽을 개최했다. 1970년대 서독은 이미 패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인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서독의 진정한 성찰이었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하여 2차 세계대전 중 자신들에 의해 희생당한 유태인 위령탑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나치즘의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으며, 이 과정에서 서독은 깨끗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안위와 민생의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통독 직전까지 서독 정부는 3만3000명의 동독 정치범을 ‘프라이카우프’(freikauf)라는 방식으로 서독으로 이주시켰으며, 연 평균 23억 달러 규모의 대 동독 지원을 실시했다. 동독 정부는 서독의 지원을 자신들의 정권을 안정화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동독 주민에게 서독의 정통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동독 주민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주저없이 서독을 선택했다.
‘통일대박’을 말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자랑하는 오늘 우리는 압축적 성장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들에 직면해있다.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자살율과 이혼율, 그리고 사회갈등지수는 한국 사회발전의 이면이다. 어느 대북사업가가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주민들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조사에서 북한주민들은 한국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다.
통일준비위원회로 통일준비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과 북한 주민들의 신뢰를 형성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통일의 첩경이라는 것을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 동안의 발전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반성을 통해 아름다운 한국을 완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굶주림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북녘 형제들을 돕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경주될 때 비로소 통일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독일처럼 준비된 통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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