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킨 뒤, 승객들을 두고 탈출해서 구속 기소된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에 대한 재판이 10일 시작됐다. 수백명 승객들을 두고, 다친 동료를 버리고 ‘1호 탈출’한 비정한 선원들이 어떤 판결을 받을 지 주목된다. 침몰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의 정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 이지 않느냐고 묻고 있고, 법학자들은 살인죄 적용은 무리지 않느냐는 의견도 일부 보이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 법’을 택하고 있는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유럽의 상당수 나라에서 세월호 침몰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선원들은 중죄로 다스려진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대형 해난사고가 아니라도, 착한 사마리아 법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데 힘을 보태야한다는 인간적 도리를 요구한다. 누구든지 충분히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을 외면해서 어떤 사람이 죽어버렸다면 프랑스에서는 최장 5년 감옥살이를 각오해야한다. 독일에서도 3년 옥살이를 피하기 어렵다. 중국도 ‘착한 사마리아 법’과 비슷한 ‘불(不)구조죄’를 범죄로 분류해서 처벌하고 있다.
법 실증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법과 도덕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법은 도덕적이지 못한 존재에 대해서 적정하게 개입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워킹맘도 아닌데, 아이를 맡기고도 정해진 시간까지 데리러오지 않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느라 아이들은 목이 길게 늘어나고, 눈치도 본다. 상습범 엄마를 방지하기 위해 늦게 온 시간만큼 벌금을 매기기 시작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더 늦게 온다. “벌금을 내는데, 볼 일 끝날 때 까지 당연히 봐줘야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후안무치는 갈수록 심해진다.
우리는 최근 응급차에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과태료 20만 원을 물리기 시작했다. 그냥 양심에 맡겨서는 응급차가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탈무드는 응급차가 오면 반드시 길을 비켜주는 것은 물론, 응급차에 실린 누군가가 큰 사고가 아니기를 기도하고, 빨리 낫기를 빌어줘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법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를 서로 필링이 통하는 ‘공통감’(共通感)이 살아있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공통감은 머리와 머리가 통하는 형식적인 통함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이 통해야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여성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공통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지나친 경쟁으로 인간 사이의 연대가 깨어져버린 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기를 때는 이 공통감을 살려주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통감은 사회성을 길러주는 교육과 비슷하다. 서로 다르지만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아름다움을 공유할 줄 아는 능력인 공통감이 없다면, 시장논리와 경쟁논리 그리고 자본논리에 휩싸인 현대사회가 너무 비정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우리 자녀들에게 공통감을 살려주려면 평상시 예술이나 문화를 많이 접해야한다. 공자도 예악을 알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예술을 알아야 아이들이 착해진다. 칸트는 도덕이 추구하는 선(善)의 상징이 바로 아름다움(美)이라고 했다. 지난주말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자식 방원을 위해 통곡하는 이성계의 부정(父情)이 눈길을 끌었지만, 자식들에게 말로 착해지라고 아무리 해봐야 헛일이다. 그냥 아이하고 같이 놀아주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면 커뮤니티를 느끼는 공통감은 저절로 생겨난다. 그럴 때, “얘야, 그건 너무 지나치지 않니”하고 잘못을 나무라도 튕겨나가지 않고 “맞아요” 수긍하는 공통감이 생기는 것이다.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추운 어느날, 군불을 지피기 위해 하나 남은 통나무를 땔깜으로 패려고 도끼를 들었다가 어린 싹이 돋아난 것을 보고 추위를 견디며 그 밤을 샜다. 평상시 생활속에서, 우리 부모들이 그런 시인의 마음을 지녀야 아이들도 무엇이 선이고, 어떻게 살아야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을 그릴지 알게되는 공통감이 발달한다.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세상 곳곳에 흩어져있는 세월호의 흔적도 하나 둘 지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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