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학술대회에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들의 국민 복지 수준을 비교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 평균 일한 근로시간은 평균 10시간30분이다. 1년간 총 2090시간을 일한 셈이다. 반면 OECD 평균치는 1776시간. 큰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한만큼 행복하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행복지수는 33위, 복지충족지수는 31위로 모두 최하위권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 항목에서도 국민행복지수는 33위를 기록했다.
이 결과를 보며 떠오른 것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로 시작되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철학 에세이 ‘피로 사회’다.
이에 따르면 20세기 후반 사회는 ‘성과사회’, 또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과주체’로 명명된다. 그 사회는 새로운 사회다. 과거가 금지(‘해서는 안된다’)로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현재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다. 그러다보니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할 수 있다’(Yes, we can!)는 긍정의 정신이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긍정성은 과잉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며 결국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로 자신을 짓누르게 된다. “잘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능력 성과를 독려하고 그 결과를 통해 살아있는 존재감을 느끼려 하니 결국 피로감이 생긴다. 또 자신의 목표 요구에 따르지 못하다 보니 좌절하고 우울증이 생긴다. 한병철 교수는 이를 한마디로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관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고 요약했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 안에서는 종교의 영역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주교회의가 마련한 세미나에서 한 발제자는 이 같은 ‘피로사회’ 속의 종교와 신앙 현실을 밝혔다. 오늘날 신앙 세계는 ‘긍정성의 과잉’ 으로 인해 신앙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제2의 신앙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또 성과사회로의 변모는 그간 의무감으로 지켜오던 신앙의 당위성에서 벗어나 ‘신앙의 활동성과 은사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드러낸다고 진단했다. 결국 그러한 은사활동의 과잉은 신앙의 기쁨을 잃고, 우울증과 비슷한 냉담이나 냉소적 신앙에로 전락될 위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인가.
7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는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가톨릭, 개신교 학자들이 함께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간 한국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차원으로 양측 학자들이 심포지엄을 개최한 사례는 종종 있었으나, 교황 문헌을 주제로 함께 머리를 맞댄 것은 초유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내용이 그만큼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큰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는 것과 함께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속에서, 그야말로 피로사회라는 현상 속에서 신앙인들이 복음의 기쁨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그 어느 때 보다 크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편 시대가 요청하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찾고 알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절박함으로도 비춰진다. 이러한 노력들이야말로 피로사회라는 시류에 맞서 우리 신앙인들이 삶 안에서 복음적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구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해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 맙시다. 다만 다를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앞서가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배웁시다”(복음의 기쁨 263항)는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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