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유럽의 북쪽 끝 레닌그라드에서 유학하던 때는 아직 사회주의체제가 유지되고 있던 옛 소련시절 이었다. 소련은 미국과 대결한 유일한 사회주의 강대국으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우주에 처음 사람을 보낸 것도 소련이었다. 스탈린 통치시기 만들어진 인간을 압도하는 건축물과 세계 2위의 공업대국을 증명하는 거대한 산업단지들은 처음 만난 소련의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련사회의 겉 모습에 불과했다. 실제 생활에서 만난 소련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레닌그라드에서 가장 큰 백화점의 실상은 충격에 가까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직선형 복도의 양 옆에 위치한 상점들의 상품 진열대는 거의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일부 열악한 품질의 상품이 진열된 코너로는 주민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주어지는 식료품 배급표를 들고 서있는 긴 줄은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었고, 오랜 시간 끝에 돌아온 자기 차례에서 물건이 동나도 사람들은 아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체제의 말기에 접어든 소련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모든 소련의 주민들은 어디를 가도 항상 비닐 주머니를 소지하고 다녔다. 부족한 물품이 보이는 즉시 사야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책가방에도 항상 식량배급표와 주머니가 들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상점을 배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권 레닌그라드의 추위 속에서 사회주의제 옷들을 몇 겹씩 껴입은 소련 주민들의 눈에 필자의 오리털파카는 그야말로 꿈같은 옷이었다. 소련 여성들은 한국 여학생들이 사용하는 스타킹의 품질에도 놀라워 했으며, 값싼 일회용 라이터도 좋은 선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실과 의사를 보유하고 있는 소련에서 아스피린하나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평등한 사회주의’라는 구호는 궁핍과 결핍의 평등화를 생활에서 강요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최고 발전국가인 소련의 모습이 이러했다. 북한은 어떤가? 적어도 소련의 붕괴시점에도 굶는 사람은 없었으며, 빵가게가 문을 닫는 일도 없었다. 북한의 식량부족문제는 만성화된지 오래이며 국가는 배급제의 책임을 던져 버렸다. 북한 주민들은 비공식적인 시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시장능력이 없는 주민들은 상시적인 아사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어느 취약계층은 비극적인 상황을 눈앞에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평양과 북한의 도처에는 세월호 사건 못지않은 비극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바닷가에 떠다니는 시체도 누구하나 거두지 않는 현실이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굶주림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위협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다. 북녘 형제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내버려두고는 대박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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