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코메디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 진지하고 비장했다. 시끌시끌하던 8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 이었던가? 숨이 턱턱 막히던 기억이 있으므로 몹시 더웠던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때 이른 더위의 5월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학생들은 비장했다. 시국이 어수선하여,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며 저녁 먹기 전 짬을 내 TV 만화를 보며 낄낄거리던 휴게실에서 모의를 하고, 나름 대오를 이뤄 구호를 외치면서 신학교 정문을 호기롭게 나섰다.
생전 그런 걸 해봤나 어디. 간신히 발만 맞춰 데모길을 나서던 우리들은 백 미터나 갔을까? 혜화동 로터리에서 덜미를 잡혔다. 쥐몰이 당하듯 성당 담벼락 밑에서 전부 잡혀 전경들의 포위 속에서 비루하게 쪼그리고 있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위에 어쩜 그리 많은 최루탄을 터트렸던지, 손등에는 파편들이 촘촘이 박혔다. 심장이 안 좋았던 필자는 독한 최루탄 가스와 더위, 동지(?)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들이 뿜어내는 황당함과 당황함(겨우 100미터도 못가서 붙잡혔다는 황당함, 그리고 처음 겪는 시위의 낮설음)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창피하지만 대오를 이탈해 전경 옆으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그나마도 허락을 못받아서 그냥 거기서 숨을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개콘 같지만 나름 공권력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신학교 입학 전 일반대학을 다니던 필자가 처음으로 공권력에 공포를 느낀 것은 대학생 답지 않게 쪽지시험을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학업에 매진하던 신입생 시절이었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바람 좀 쐬려 도서관 문을 나서려는 순간, 군홧발 소리가 캠퍼스 아래로부터 들려왔다. 이미 곳곳에는 유인물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치약과 손수건으로 무장(?)한 학우들이 여기저기서 치달리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시절이었다.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던 필자였지만 침범하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공포는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공권력 스스로가 보여줬던 뻔뻔한 ‘민낯’으로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었다. 훗날 남의 대학교 뒷산에서 하던 실전 대비 데모 연습은 그렇게 배운 것을 복습하는 시간이었다.
최근 우리는 그 ‘민낯’을 밀양에서 다시 목격한다. 이미 여러 번 접했던 것이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제 완전히 일말의 가책이나 머뭇거림도 없다. 적어도 수녀님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성직자, 수도자 분들을 거리에서 자주 봐서 그런지 ‘신비주의’에 대한 존중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하긴 그 나이 먹은 어르신들을 그리 다루는데, 수도자들이라고 별다를까.
공권력의 조롱과 멸시 섞인 폭력에 비해 어르신들의 복수는 애교처럼 보인다. 밀양의 할머니와 수녀님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주물러주면서 공권력에 대항했다. 그리고 나선 복수로 풍자와 해학의 ‘국민대집행 경찰청사 철거 영장 발부’에 나섰고, 무차별 진압 후 승리의 V자를 그렸던 공권력을 향해 똑같이 V자의 기념촬영으로 응징했다.
억압의 한을 해학으로 푸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차마 풀어낼 길 없는 분노와 한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심리요법이기도 했다. 밀양의 어르신들을 보면서 공권력이 자아내는 공포와 분노가 이제는 저항과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의 비극에서 우리는 연대의 저항을 배운다. 공권력은 여전히 사람을 너무 만만히 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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