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경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특히 성지순례 일정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입살라’라는 국경도시를 거쳐 그리스 땅을 밟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일정을 따를 경우 그날은 대개 ‘카발라’(Kavalla)라는 그리스 북부 항구 도시에서 여장을 푼다. 몇 년 전 필자가 성지순례 길에 나섰을 때에도, 그리스에서의 본격적인 순례는 이 곳 카발라에서 였다.
한적하고 유서 깊은 휴양지로 유럽인들에게는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화려하지도, 북적이지도 않은 항구 카발라에 지구 반대편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발걸음을 멈추는 배경에는 바오로 사도가 자리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 때 (50-52년) 터키 서해안 트로아스 항구에서 선교할 무렵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환시를 듣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 네아폴리스 항구로 향한다. 카발라는 바로 이 성경 속 도시 네아폴리스다. 그는 여기서부터 당시 로마제국의 대동맥 ‘에냐시아’ 국도를 따라 그리스 북부지역에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교회를 세웠다. 유럽 대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바오로 사도의 ‘첫 발’이 움직여진 곳이라 하겠다.
해변 부두를 지나는 길 이름도 ‘바오로 로’(路)다. 당시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요한 교통 요지였던 이 곳에서 바오로는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행보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에게 해(Aegean Sea) 풍광 속에 해변가를 지나면서 2000년 전 바오로 사도의 발걸음을 쫓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네아폴리스 도착을 기리는 바오로 기념 성당에는 사도행전 16장 9~12절 말씀이 새겨져 있고,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는 환시 장면과 네아폴리스에 도착한 장면이 역시 모자이크로 표현돼 있다. ‘바오로 로’를 마주했을 때 느낌처럼, 바오로 사도의 용맹스런 신앙이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가슴 한 켠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카발라’를 새삼 떠올린 것은 전례적으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세월 호 참사를 비롯 한국사회 전반의 모든 것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바오로 사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7)라는 말이 마음 안에 돋아나서다. 한 신학자는 많은 시련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늘 새롭게 또 다시 시작했던 사도 바오로의 삶은 그 유명한 사랑의 송가 내용처럼 ‘사랑’의 힘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풀이했다. 그 사랑 때문에 몇 번 실패하면 힘을 잃고 마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바오로는 결코 실망으로 주저앉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진부하게 들릴 만큼 신앙인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익숙한 처지이지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살고 있는 환경, 또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 생명 존중과 책임 희생의 윤리가 설자리를 잃고 있는 암담한 사회현실에서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디는’ 사랑의 실천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는 것 같다.
8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화두로 한 한국교회 전체의 쇄신 의지가 불붙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모습 속에서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채우면서 사랑의 계명을 다했던 사도 바오로의 생애를 다시금 떠올린다.
쇄신은 말 그대로 묵은 것을 버리는 새로움이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이오”(로마 12,2)라고 했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그 어느 때 보다 마음 안에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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