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질 논란 끝에 결국 자진 사퇴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며칠 동안 나라 안이 정말 시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기준에서 이런저런 평가와 판단을 내세웠다. 늘 그렇듯이 논란이 깊어지고 말이 많아지면 무엇이 본질이고 문제의 핵심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심한 경우 억측과 궤변으로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는데 급급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뻗어나간 논란의 잔가지들을 다듬으면서 정작 주목해야 할 중요한 줄기가 무엇인지 차분히 정리해보아야 할 때이다. 이번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질 논란을 보면서도 어설프지만 내 나름대로 잔가지와 줄기를 구분해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내용들 중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거슬리고, 이번 사안에서 진정 우리가 깊게 주목하고 성찰해야 할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우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은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이다. 논란의 진원지였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 내용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 통치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내용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알려지면서 친일 또는 식민사관을 지닌 사람이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문제의 발언 내용이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전체 강연 내용의 취지는 하느님이 식민 통치와 같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 우리 민족을 이끄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 전체의 취지를 놓고 보아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주변의 여러 신학자와 신부님들로부터 공통적인 의견을 들었다. 굳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 고통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현세 삶에서 만나는 고통과 시련은 하느님이 계획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고통을 주는 하느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고통을 잘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에 있다.
내 생각에 이번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총리로서의 자질이 없는 이유를 친일이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논하는 것은 이미 잔가지가 된 것 같다. 문제의 교회 강연 내용만 놓고 보면 이에 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총리 후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교회 강연 내용을 처음 보도했던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 편집에 초점을 맞춘다. 잔가지 때문에 줄기가 모호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줄기는 교회 강연 전체 내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총리 후보자의 부적절한 신앙 이해이다. 이런 부적절한 신앙 이해를 지닌 사람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은 심각하게 위험한 일이다.
개인적인 신앙 이해가 공직자의 자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며칠 전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한 패널이 교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것을 보았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분들은 종교의 본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를 그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만 국한하면서 일상 삶의 다른 영역과 분리시키는 부적절한 이해이다. 종교는 한 개인의 깊은 내면에 절대적인 신념을 형성시켜주고 그 신념의 실현을 위해 일상의 삶 전체를 헌신하게 한다. 한 개인의 종교 신앙은 일상 삶의 구체적인 판단과 행동 전체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개인적으로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의 종교 이해가 본래의 종교 의미에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왜곡된 맹목적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그 사람의 판단과 행동은 주변 사람과 사회 전체에 많은 피해를 준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어느 누구보다도 중요한 공직자의 자질로 종교 신앙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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