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그리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가끔 외신 번역을 하면서 ‘민간인’들보다는 조금 더 자주, 아주 조금 더 많이 교황의 말과 행동을 전해받을 뿐이다. 그래서 그분이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성격이 어떤지, 좋아하는 취미나 음식이 뭔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은 혹시 없었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은 어땠는지 등등 궁금한 점도 많지만 그저 언론 보도를 통해서 단편적이고 파편적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교황으로 전혀 물망에 오르는 인물로 노출되지는 않았던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지금까지, 그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언행들을 일관하고 있는 한 가지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탄스럽기가 그지없다.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그에게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자비로운 동시에 정의롭다, 혹은 정의롭지만 참으로 자비하다는 점이다.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자본주의 비판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한 연민의 정을 표시할 때, 자비와 정의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의를 앞세워야 할 때 자비를, 자비가 앞서야 할 때 정의가 앞장서는 필부로서 필자는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이 며칠 전에 발표한 제3차 임시총회 의안집은 세간의 경박한 입방아들이 기대했듯이 교리적인 가르침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을 담고 있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짐짓 매우 ‘진보적’인 어투로 가정, 생명, 혼인 등에 대한 교회 가르침들을 비판하지만 이에 대한 교황의 입장은 확고한 듯하다.
그래서 의안집에서는 가르침들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아니라, 이 가르침들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사람들이 적극 수용할 만하게 제시하느냐에 대한 사목적 방안 모색에 관심을 둔다. 불만스럽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낙태, 피임, 이혼, 동거, 혼전 성관계, 동성애 등등 혼인과 생명, 가정 문제에 관련된 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가르침들은 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주 정신적인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지키지 않는 규칙은 더 이상 규칙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함직도 하다. 어쨋든 앞으로도 논란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은 이에 대한 논의보다는 의안집을 이전까지의 다른 교회 문헌들과 달라 보이게 하는 강조점과 어투이다. 즉, 의안집에 담긴, 프란치스코 교황을 특징 짓는 많은 것들 중의 한 가지인, ‘자비’의 강조이다. 의안집을 통해 드러나는 교황의 의중은 무엇보다도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연민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하다. 교회의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고 있거나, 현대 세계의 상대주의적 문화 풍조에 매몰되어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하거나, 또는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피치 못할 이유들 때문에 혼인과 가정, 생명에 대한 교회 가르침에 충실히 따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 그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경제와 정치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 이 두 가지가 교황 프란치스코에게서 동시에 발견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한 듯하다. 자비와 정의는 함께 가지만, 자비로워야 할 때 정의를 들이대면 억압이며, 용맹한 정의로움을 불태워야 할 때 흠칫거리고 물러서면 비겁함이 된다. 교황은 두 가지의 분별에서 명확하며 단호하며 머뭇거림이 없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교황 방한을 기다리기가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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