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구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하러 갔던 때가 잊혀 지지 않는다. 강의를 위해 내가 도착했을 때 초대해 주신 교장신부님께서 미리 보내드린 강의원고를 검토하신 결과 이런 강의라면 학생들이 함께 들어도 좋겠다는 교무회의의 판단에 따라 2학년 학생들을 강의실에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말씀하셨다.
난감했지만 이 결정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학생들과 눈을 맞추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내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해 주는가 하면, 손을 들고 질문도 한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즐거운 가운데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을 떠나는 학생들 표정이 너무 행복해보였다. 그래서 내 앞을 지나는 그 학생들에게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너희들 행복하니?”
그 순간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 목소리로 답한다.
“예, 저희들은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나는 틈을 주지 않고 “왜?”하고 다시 물었다. 강의 내내 질문을 제일 왕성하게 하던 학생이 답한다. “저희들은요, 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충분히 존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강의 시작 전에 교장신부님을 통해서 입학 당시의 무질서하고 험하던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고 달이 지날수록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를 들었던 말씀이 생각나서 고개만 끄덕이는 채 서있던 나에게, 작고 상냥하게 생긴 여학생이 생글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행복한 또 하나의 이유는요, 여기에는 엄마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학생들이 어머니가 안 계셔서 행복하다니, 나는 이 말이 너무 민망할 뿐 아니라, 아직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신 어머니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그분들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죄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그래. 내가 잘못해서 네가 정규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오게 되었단다. 모두가 내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였다.
자녀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할 엄마들이 이분들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왜,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채 아이를 위해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면서 태어나면서부터 걱정이 참 많다. 내 아이를 위해서 이것도 가르쳐야 하고, 저것도 더 늦지 않게 배워야 한다면서 사정없이 다그친다. 남의 아이는 말없이 잘해내는데 왜 내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를 서로 비교하는 잔인함도 서슴지 않는다. 아이도 생각이 있고 할 일이나, 할 말이 있는데 인격존중이나 할 말은 늘 나중으로 미루어지고, 지금은 무조건 학교성적이 남에게 뒤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성당에 가야하는 시기도 대학에 진학한 뒤로 미루어진다.
심지어 아이가 학습에 성공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3대요인을 ‘할아버지의 재력(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힘), 엄마의 정보력(어머니들끼리 만나서 얻게 되는 과외정보나 입시정보), 아빠의 무관심’이라면서 남편을 자녀교육에서 배제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가 여기에 안 계셔서 행복하다”는 말까지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6장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창조주인 그분께 아이를 맡겨드릴 때 아이는 한없이 행복해 질 것이다. 끝으로 충고에 대한 간디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한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간디를 찾았다. 너무 단 것을 좋아하는데 존경하는 간디가 만류하면 단 것을 안 먹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간디는 열흘 뒤에 오면 그렇게 말해주겠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간디도 그때까지 단 것을 즐겨먹고 있어서 아이에게 그 말을 해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속대로 열흘 뒤에 찾아 간 아이에게 간디는 단 것을 좋아하면 어떻게 안 좋은지를 잘 설명하여 아이의 좋지 못한 식습관을 고쳐주었다는 일화이다. 누군가를 지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부터 바뀌어야 함을 말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들 모두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런 지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 장충여자중학교, 영등포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시교육연구원, 교육부 교육연구사,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인사위원회 위원, 한국평협과 서울평협 회장에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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