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는 꿈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서른부터 일을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적어도 5개의 직업은 가져보겠노라 다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희망 직업군에 공무원, 그것도 교정공무원은 단 한 번도 속한 적이 없었는데 저는 현재 교도관으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정직이 평생의 직(職)이 될 것 같습니다. 지인들은 참으로 신기하다고들 하지만 저는 이제 기꺼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으로 인해 이 보잘 것 없는 제가 교정직에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든 일이지만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루하루 근무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 봄 신앙을 갖기 전까지 저는 수년간 끊임없는 자괴와 분노와 상실감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교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접하며 스스로를 점점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짓고도 변화되지 않는 수용자들을 볼 때면 한없는 분노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는 수녀님들을 소개하고,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본 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졌던 자괴와 분노는 얼마나 작고 부질없던 것이었던가?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로구나.’ 깊은 감명을 받은 저는 일고의 고민도 없이 인근 성당을 찾아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것이 제 신앙생활의 출발이었습니다. 비록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렸다고는 하나 ‘과연 신앙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석 달만 임해보자 했는데 교리수업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되어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신심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하루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일과를 시작할 수 없고, 성서을 읽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게 되었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 뭐라 설명해야할까요? 하느님의 축복과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었을까요?
얼마 전 후배 교도관이 힘들다기에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감회를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면 이런 깨달음은 절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전 달라졌습니다. 자괴감은 자긍심으로 변했고, 분노는 감사로 승화시킬 줄 알게 되었습니다. 엄정한 법 집행이 우선이겠지만 수용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멋진 교도관이 될 것이며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밝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잠들기 전, 기도 해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세상이 자기를 버렸다고 여기고 생은 한번뿐이라고 말하면서
온갖 죄를 저질러 온 이들을 관리하고 교화하는 일은
참으로 고되고 힘드나이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어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소명을 잃지 않도록 하소서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어
이 차가운 곳에도 따뜻한 빛을 내려주소서
언제나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소서
제 생이 고통에 고통으로 점철되더라도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하느님 주신 능력 안에서
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면 그것을 거룩한 영광으로 여기겠나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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