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과 신앙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주일을 빠지지 않고 지키지만 월요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생을 투신해 사제나 수도자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사회활동과 실천적 신앙의 기로에서 늘상 갈등하는 존재다. 그만큼 사회의 흐름이 복음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기자는 지난주 시골에 있는 한 봉쇄 수녀원에 취재를 다녀왔다. 몇 년 전 이곳 수도자들과의 첫 만남은 신앙을 어떻게 삶으로 온전히 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해준 곳이다.
수녀들의 수방(숙소)에 비가 줄줄 새 비닐을 덮고 잠자리에 들어야 함에도 “가난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23명의 수녀들이 공과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50만 원으로 생활한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터뷰 내용으로 당황하게 만든 가르멜의 모후 수녀원이 바로 그곳이다.
이번 취재에도 여지없이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수녀님, 건물이 거의 완성되었다면서 왜 천장도 벽면도 공사 중인 것처럼 아무것도 없나요?”
“수녀들에게 기도할 수 있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치장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은인들이 십시일반 기도로 모금으로 도와준 곳이지만 이곳의 수녀들에게는 기본적인 안락함이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이렇게 신앙과 기도에 전력투구하는 수녀들의 얼굴은 오히려 평안하기만 했다.
스스로 봉쇄하고 작은 골방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신앙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핑계로 방종의 세상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의 자화상보다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자유와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