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최근 한국 방문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고 이날 귀국 길 기자회견에도 세월호 리본은 왼쪽 가슴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 특히 AP통신은 교황 방한을 정리하는 기사에서 16일 광화문광장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 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의 손을 잡고 얘기를 들어준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적인 약자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괴롭히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최근 선임병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사망한 윤아무개(21) 일병이 쓰러져 숨지기 직전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온몸을 구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교 그리고 회사에서도 왕따가 성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군대까지 인간존엄성 파괴와 약자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양육미혼모를 도와주면서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낙태하지 않고 생명을 지켜 어렵게 아이를 출산하여 키우는 어느 미혼모가 자녀를 어린이집에 입학시키려고 순서를 기다리던 중 미혼모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부모가 있는 자녀를 우선적으로 입학시키고 선생님들도 미혼모 아이들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혼모들은 남편을 묻는 질문에 항상 긴장해야 하고, 마치 별종을 대하듯이 쳐다보는 눈빛에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심지어 이러한 수모는 성당이나 병원 그리고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에서까지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2013년 3월부터 11월까지 공식적인 104회 연설을 분석하여 가장 많이 사용된 ‘하느님’, ‘예수’, ‘주님’, ‘그리스도’, ‘교리’ 등 다섯 개의 단어를 제외한 그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단어들은 바로 ‘생명’(life)과 ‘사람들’(people)이라고 한다. 이를 증거 하듯 교황은 방한하여 시종일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 축복해 주면서 ‘생명과 사람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생명과 사람 중심의 문화’를 이루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교황은 가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위해 눈 맞추고 손을 잡아 주며 관심과 배려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예수님의 바로 그 방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경제성장주의로 인한 죽음의 문화에 지쳐있고 세월호 참사의 아픔으로 상처 입은 한국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오늘날 한국사회 지도자들의 역할은 꿈을 경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다.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계획’이 있고,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는 ‘행동’이 있다. 행동이 있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고, 발전하는 사람은 ‘반성’을 한다. 그리고 반성하는 사람은 새로운 ‘꿈’을 꾼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 바로 지금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초대하는 ‘생명과 사람 중심의 문화’를 이루는 꿈을 함께 꾸어야 할 때이다. 문화는 수많은 습관들의 산물이다. ‘생명과 사람 중심의 문화’는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주변에 가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약자인 사람들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일을 시작하고 반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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