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가 마당을 가득 메우는 가을입니다. 길을 따라 코스모스도 한창입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도 빠질 수가 없지요. 농부의 일손도 어느덧 바빠지고 있습니다.
포장된 신작로를 따라 풀 먹인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와 옥색 조끼를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허리를 곧추 세우고 우리 집 앞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면소재지를 들리러 아득히 보이는 안마을에서 먼 포장길을 걸어 나오시나 봅니다. 언제 보아도 위엄과 절제가 묻어납니다. 내가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분은 아닙니다.
매번 집 앞을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 할아버지의 이력이나 존재에 대하여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 농협에 공과금을 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옆 창구에서 보게 됐고, 창구 직원과 하는 대화를 우연하게 엿듣게 됐습니다. 창구 여직원이 몇 천원밖에 안 되는 공과금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었던지 “할아버지는 한 달에 어느 정도면 사세요?”하고 묻습니다. 창구 직원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통장 비밀번호까지 외우고 있어야 업무가 가능한 시골 농협이기에 간혹 아주 아주 사적인 대화도 거리낌 없이 오가곤 합니다. “한 십만 원이면 충분해. 전기세하고 담뱃값하고….” 각종 전기요금과 식구 수대로의 통신비, 수도요금, 그리고 각종 세금청구서까지 열장 넘는 청구서를 내밀던 내 손이 그만 부끄러워집니다. 더군다나 흙 묻은 장화에 땀 절은 옷까지 무슨 유세라도 하는 것 같은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보입니다.
지금 경제 살리기가 한참인가 봅니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겨야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소비가 살아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합니다. 돈을 돌리기 위한 온갖 수단이 동원됩니다.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타기 같습니다. 자전거는 어디로 가든 페달은 더욱 세게 그리고 계속 밟아야 합니다. 좋으나 싫으나 자전거는 타고 있어야 합니다. 힘이 달리면 먼저 넘어가고 탈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그 힘을 오래 그리고 많이 간직하려다 보니 세월호 같은 일도 겪게 되나 봅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농촌 경제도 말이 아닙니다. 체감되는 모든 농산물 값이 뚝 떨어졌습니다. 쌀 수입도 관세화로 전면 개방됐고, 중국과의 FTA도 곧 체결될 것 같습니다.
위정자는 타기 싫어하는 농민까지도 무조건 동승을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굴러갈 수 있다고요. 스마트폰 몇 대 더 팔자고 식량기반을 허물자고 합니다. 이웃나라 필리핀처럼 식량 구입할 돈이 없어 발동되는 긴급조치가 없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여름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에 수심까지 가득합니다. 모든 경제 결과는 농민에게 곧바로 전가됩니다. 임금과 자재가격은 하방 경직적인 반면 농민 수입은 농산물 경매시장의 시세에 따라 곧바로 시시각각 반영됩니다. 그 시세에 따라 농민의 품값이 결정됩니다. 자재비를 포함한 제 경비를 제외한 이익이 자가노동비를 초과하면 경영수익이 발생하지만 경영수익은 교과서에만 나오고 실제로 발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농민도 노동품으로 먹고 사는데 농산물 시세에 따라 그 노동품이란 것이 발생할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농민은 노동일을 하고 품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고요? 농촌은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이 할아버지처럼 화폐경제 없이 자체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자전거를 타라고 합니다. FTA도 해야 한답니다. 도시의 공산물을 수출하기 위해서 농민의 생계조차도 담보로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과소비를 미화하고 조장하며 우리를 신자유주의 시대 경쟁의 먹잇감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소득이 우리의 존엄과 자존감을 보장하지 않으며 더구나 상관관계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지수도 올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가 오히려 행복지수가 높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곤 하지요. 일상의 여유와 기본적인 이웃관계가 행복한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행복한 이웃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전거타기를 멈추고 풀 먹인 옷을 입고 내 다리로 신작로 길을 걸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 삶의 여유와 행복한 자존감은 내 다리로 걸을 때 오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