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요?”라는 인사말을 예사로 듣는다. “아니요. 안 바빠요.” 뚝, 시침 뗀다. 다들 바쁘다고 하는데 나 한사람이라도 바쁘지 않은 척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4일씩 아이들을 가르친다. 할 일이 밀리다 보면 하루에 대여섯 권의 책을 읽고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매일 미사를 드리며 토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소년원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친다. 나의 생활을 아는 이들이 묻는다.
“언제 살림해?” 담백하게 대답한다. “짬짬이” 뭐든 짬짬이 한다.
아는 이가 전화해 묻는다. “바빠요?” “아니요.” 즉시 대답한다. 그이는 내가 얼마나 바삐 사는지 잘 알면서도 시간 내주길 청하고 싶은 것이다. ‘보고 싶어서’이거나 ‘뭔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하소연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를, 혹은 나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바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 있어요?” 라는 물음에 “그럼요. ”시원하게 대답한다.
“바빠 죽겠어요. 이 날은 이래서 바쁘고 저 날은 저래서 바쁘고….”
이런 식의 대답은 사람 사이에 난 길을 막아 버릴 수 있다. ‘바쁜 사람에게 내가 부담을 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만나고 싶은 마음을 거둬들이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하는 일들이 중요해도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다. 상대가 원하는 때에 시간 내기가 어려우면 서로 조정하면 된다.
“오늘 말고 내일은 어떨까요?”
각박한 세상, 조금만 더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바빠도 짐짓 덜 바쁜 척, 힘들어도 덜 힘든 척하며 이웃들이 편안하게 들어설 수 있는 자리 하나쯤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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