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통일기원 압록강 백두산 순례’의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다른 무엇보다 바로 ‘백두산’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두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기대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순례의 목적, 의미, 주제성구 등에 대한 생각보다, 백두산을 갈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하늘이 열어줘야 볼 수 있다는 천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순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례를 하면서 백두산을 바라보고, 천지를 올랐을 때의 감동보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의 모습들이 더 큰 인상을 주고 마음에 남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외국인보다 더 불편하고 어렵게 생각되는 것이 바로 북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경직되고 어려운 생각을 하던 나에게 북한사람들과 중국사람들,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섞여있는 단동이라는 도시의 모습이 낯설고 혼란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밝고 화려한 단동의 야경과 과연 저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두운 신의주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 일행은 압록강변에서 유람선을 타고 수풍댐으로 향했습니다. 강을 따라가며 보이는 북한의 모습들은 말로 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산에는 나무를 찾기 힘들고, 소들이 산 중턱까지 올라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하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들, 우리가 손을 흔들어 주자 답례로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 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이라는 곳에 대한 경직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백두산을 오르면서 백두산은 역시 백두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멋있는 나무들과 화려한 산의 모습, 백번을 올라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천지의 맑은 모습을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두산은 북한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훨씬 멋있다고 합니다. 이런 멋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민족의 산을 직접 오지 못하고 중국을 통해서만 올수 있다는 현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정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집행을 당한 여순감옥으로 향했습니다. 여순감옥을 돌아보며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장소에는 안중근 의사가 쓴 글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쓴 편지 글에 “훗날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자”는 문구를 보면서 신앙인으로서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순례를 통해 주제성구인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끄소서”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는 평화는 강제적으로 그들과 분쟁이 없는 상태도 아니고 심리적으로 평안한 상태도 아닙니다. 바로 있는 그 자리에서, 아픈 현실들을 온전히 바라보고 이러한 아픔들을 예수님 사랑으로 채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평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 아픈 현실들을 거부하고 나의 방법대로 모든 것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경직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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