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1994년 대충 20년 전 쯤 이었으리라. 알량한 내 사업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서울 대치동본당에서 견진성사를 준비할 때 봉사자였던 대부 바오로는 나와 동갑이었다. 견진성사를 마치자 성경공부를 권했다. 부도위기 탓에 경제적 도움이 절실했지만, 그는 외면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청담동성당에서 필리피나 수녀님의 강의를 대부와 3년을 함께 들었다. 어찌되었든 부도를 내지 않고, 사업을 정리 할 수 있었다. 대부 바오로의 판단은 옳았다. 당시 명강의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은 한 토막.
어느 수녀님이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위해서 수녀원을 나설 때 갑자기 예정에 없던 큰 손님의 방문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 했단다. 수녀님은 더 열심히 손님을 잘 모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 갑자기 비가 와서 물에 잠기는 바람에 당일 시험이 일주일 연기 되었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오묘하여 우리는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떤 고통도 기쁘게 견디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반전이 곧, 부활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우리는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이 헷갈리거나 당황하여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성가대 연습을 위해 밥도 해놓지 않고 남편에게 챙겨 먹도록 한다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
남는 시간에 봉사하고 남는 돈으로 기부하고 그건 아니다. 세상에 남는 시간과 남는 돈은 존재하지 않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봉사하고 작은 돈을 쪼개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다면 하느님은 분명 기뻐하실 것이다.
최근 이웃의 70대 자매님 한 분과 80대 형제님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픈 것은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실이 더 가슴 아프다. 물론 두 분이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웃의 불행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두 분이 말기 암 환자였다지만, 호스피스 등 주위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죽어도 좋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것이 남의 죽음이기에 우리는 무관심한 것이다.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할 부분이 아닐까?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는 그림자가 없다. 봉황의 큰 뜻을 참새는 모른다. 정신없이 바삐 살다보면 이웃의 부르짖음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 한 번쯤은 주위의 어르신들과 소외된 이웃의 한숨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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