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번쩍 손을 드신다. 강론시간도 아니고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도 아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신부님, 잠시 미사를 중단하고 물으셨다.
“무슨 일이십니까?”
손을 들었던 할머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부님, 이 자매님이 가스 불을 켜놓고 나왔대요. 아무래도 큰일 날 것 같은데 가봐야겠어요.”
왁자하니 난리가 났다. 가스 불 켜놓은 채 집을 나와 음식을 태우거나 집에 불을 내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의 사연, 얼마나 흔전한가. 미사 중 태도가 불량한 것도 용납 못 하시는 신부님이지만 할머니의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클클거리시더니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당사자 한 분만 가시는 게 아니다. 손들고 용기 있게 신고한(?) 할머니랑 두 분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허정허정 나가시는 것이다.
10분이나 지났을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소동을 피우며 성당 문을 나선 두 할머니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나란히 줄지어 들어오신다. 신부님께서 대표로 물으신다.
“가스불은 괜찮았어요?”
두 분 할머니, 아이처럼 히죽 웃으며 이렇게 응답하신다.
“안 끈 줄 알았는데 끄고 왔더라고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손 번쩍 든 다음 “하느님,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곤경에 처한 이웃의 아픔을 하느님께 아뢰고, 기꺼이 마음 한 자락 꺼내어 이웃과 동행한다면 그분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다’ 하지 않는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