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정신병원 좀 데리고 가 주세요.”
밤늦은 시각 날아온 문자 한 통이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회오리바람 속에서 그만큼 견뎌오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아빠의 외도가 불러온 파장은 넓고도 컸다. 부모의 끝없는 불화와 이혼, 재혼, 또 다시 반복되던 불화….
다음 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괜찮다. 요즘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단다. 이렇게 팍팍하고 삭막한 세상에 온전한 정신으로 산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지.”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는 동안,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수시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문득 ‘이 아이는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외로워서 그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지.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고. 산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이더냐.
의사와의 상담을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으며 긴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냈다. 집에 와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사랑하는 OO야! (이하 생략)”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모든 아이들을 부를 때 꼭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덧붙인 건. 평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한다. 아이들이 예쁜 짓을 할 때 뿐 아니라 야단을 쳐야 할 일이 있을 때도 이 말을 덧붙인다.
“사랑하는 OO야!” 이렇게 부르면 아이들은 자신이 혼날 짓을 했다는 걸 알면서도 배시시 웃는다. 나 역시 이 녀석 혼 좀내야지, 라고 생각하여 이름을 불러놓고는 더 이상 야단을 치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라는 말의 마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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