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우린 많은 생각과 감정의 교차 속에서 살아간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로 인해 우리의 매일이 흙탕물처럼 뿌연 상태일 때가 태만사다. 그런 마음상태에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만나게 되면 마음은 더 복잡해지곤 한다. 그건 내 안에 잠재된 생각과 감정들(특히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여기’ 내가 만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기에 많은 오해가 생기고 그로 인해 서로의 마음에 상채기를 내곤 한다. “아,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의 잣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흙탕물을 맑게 만들려면 가만히 두는 수밖에 없다. 그렇듯 생각과 감정들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도 맑아지려면 고요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면 갈수록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현대인들은 아침에 눈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스마트폰 속에서 살아간다. 잠시도 자신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모처럼 기도하려고 눈감고 앉아 있노라면 생각은 왜 그다지도 많이 떠오르는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끝없이 떠오르는 상념들로 인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이럴 때 나는 불교의 호흡명상을 활용해서 호흡기도를 하곤 한다.
호흡기도는 가만히 앉아 자신의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방법이다. 먼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천천히 수를 센다. 들이쉬면서 하나, 내쉬면서 둘, 이렇게 열까지 천천히 세어간다. 이렇게 자신의 호흡에 마음을 집중(mindfulness)하다보면 어느새 또 생각이 올라온다. 보통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에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는데 바로 그 때 생각에 빠진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생각에 빠져 있었음을 알아차린 후 다시 본래의 집중대상이었던 호흡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호흡과 함께 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것을 세 번 정도 반복한 후 자연스럽게 숫자 대신 예수님 (혹은 성령님)으로 바꾸어본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예수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호흡과 함께 내 안에 머무심을 상상해보라. 이렇게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수행을 거듭 하다보면 우리는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보통 일상에서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동반응 체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 그리고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버리곤 한다. 호흡기도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흘러 보내는 연습을 하게 되면 그러한 생각이나 감정이 실체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한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조금씩 상대에 대해 지녔던 종전의 감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서의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 안에서도 잠깐이라도 이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상태가 달라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병원에 가서 순서를 기다릴 때 시간이 지연되면 마음이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분명 진료 예약을 하고 왔건만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시간약속을 지키지도 못할 거면 예약은 왜 하는 거야, 환자에 대한 배려가 정말 없네”하면서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기 시작하고 나중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만다. 사실 이 비슷한 일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하는가. 그 때 화내는 자신을 ‘알아채고’ 호흡기도를 해보자.
그렇게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다보면 “내가 화를 낸들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데 괜히 속상해하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구나“ 하며 생각을 바꿔 먹을 수 있다. 우리가 평정심을 잃는 것은 대개 자신의 생각 때문이다. 피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평정심을 잃어버리곤 한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시나리오를 만들고 마음을 ‘오작동’시키기에 평화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거리를 두고 살펴볼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의 삶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빠른 속도로 작동해버리는 자동반응체계를 어떻게 멈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호흡기도는 이것을 도와줄 수 있다. 하루 아침에 평정해지진 않더라도 계속 하다보면 자신의 자동반응체계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는 기도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깨어 있으려면 먼저 고요해져야 한다. 마음이 고요해져야 맑아지고, 맑아져야 지혜가 밝아진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그분의 ‘말씀’과도 상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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