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교회의 제3세기가 시작되는 올해는「증거의 해」로 설정되었다. 교회 당국이 올해를 한국 교회가 살아갈 새로운 세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신자들이 삶으로 신앙을 증거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成長밑바탕은 선열의 신앙
지난 이천여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해 왔고 이백여년전부터 우리의 선열들이 증거한 신앙은 복음에 대한 신앙이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복음에 대한 신앙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진리에 대한 신앙이다. 아울러 하느님이 그지없이 사랑하시는 인간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요청에 응답하는 신앙이다.
우리 순교 선열들은 복음적 신앙을 생활화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모범적으로 증거한 분들이다. 그들은 봉건군주적이고 계급제도적 사회구조 안에서 경직된 신분의식을 과감히 초월하여 만인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형제자매라는 복음의 진리를 생활화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쁜 구원의 진리를 이웃에게도 헌신적으로 전파하였고 가혹한 박해에 직면하자 순교로써 자신들의 복음적 신앙을 증거했던 것이다. 순교선열들의 철저한 구도정신ㆍ진취적인 사회개혁의지 그리고 진리를 위한 불굴의 순교정신 등은 후예들인 우리 신자들이 열성껏 계승해야할 자랑스러운 유산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이토록 위대한 신앙의 순교자들이 피로써 뿌린 씨앗의 열매라고 할수 있겠다. 우리교회는 한 세기가 넘는 혼독한 박해를 견디어야 했으며 분단 40년이래 여전히 박해받아 침묵하는 공산치하에서의 북한 교회를 제외하고 2백만에 가까운 신도를 포용하는 활기찬 공동체의 면모를 국내외에 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교회는 민족사회 안에서 어느 누구도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 괄목할만한 외적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이 사회의 어느 다른 집단에도 뒤지지않는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이따금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해 우리가 기념한 2백주년이 교회의 차원을 넘어 민족사회와 세계교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환 時代 대처할 준비를
그런데 우리는 올해가 지니는 시대적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면서「증거의 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와 세계안에서 극적이고도 광범한 변혁이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는 21세기를 불과 15년앞에 둔 시점에서 맞이하는「증거의 해」에, 지난 이천년이래 변함없이 타당성을 지니는『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한국교회는 21세기의 변화된 민족사회와 세계교회안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전망하고 부과될 과제에 대한 대응책을 신중하고 치밀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21세기의 한국과 세계에 관한 논의가 일부 과학자들과 경향으로 미루어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고 있다. 사회의 여러 계층에서 21세기를 지향하는 장기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음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미래는 본시 인간의 설계를 무산시키고 홀연히 선물로 다가오는「새로운 것」을 자체에 간직하고 있지만, 인간은 미래를 불가항력적 숙명으로,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전체 세계를 보다 자유롭고 의롭게 가꾸는 가운데 미래를 능동적으로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와 신앙의 문제를, 고도로 발달한 교통과 통신수단으로 말미암아「지구촌」이 되어버린 세계안에서 관조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21세기의 민족 사회와 세계 교회, 더 나아가 전인간 가족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서 신앙을 증거하는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시대의 징표」에 유익하면서, 즉 현대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직면하게 되는 사건과 요구와 염원을 체험하면서 이 속에서 드러나는「하느님의 뜻」을 인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처럼 목마른적 있었던가
현재와 미래의 세계는 과학과 기계기술에 의해서 전반적으로 규정되고 있고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계기술이 입각해서 달성된 문명의 업적이 인류의 일치와 세계 평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현대 인류가 처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과학과 기계기술만의 힘으로는 인류의 일치와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기 보다 불화의 불의, 그리고 부조리의 정도를 격화시키거나 심화시킬 가능성이 더크게 느껴진다. 그렇다. 유사이래 인간들 사이를 가로막고 분리시키는「유유상종」(類類相從)현상이 가까운 장래와 21세기에 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전세계에 짙게드리워져있는 괴로움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빛에 대한 갈망은 대조적으로 더욱 강렬하기 마련이다. 「질적으로 새로운 세계」, 즉 만인이 자유와 평등 평화를 누리며 생활할 수 있는 정의가 구현된 세계에 대한 요청과 갈망이 오늘날처럼 전세계적으로 강렬하게 발해진 시기는 일찌기 없었다. 우리는「정의가 구현된 세계」에 대한 요청과 갈망속에서「시대의 징표」를 읽고「하느님의 뜻」을 인지하여 이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큰 안목 지니고 言行 하나 돼야
정의가 구현된 새로운 세계는 그리스도에 의해 선포되고 생활화 된「하느님 나라」안에서 이미 그 실상을 드러냈으며 우리의 순교 선열들의「신앙공동체」안에서 실현되어 주위에 빛을 발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진실로 자유롭고 평등한 지상의 하느님 나라라고 자처하기에는 신자들의 삶과 교회의 구조안에 부족하고 부조리한 면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오늘날 세계교회가 성장일로에 있는 우리 교회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우리 모두가 올해에 교회를 쇄신하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구현시키는 작업에 거시적 안목을 지니고 언행일치의 자세로 임할 때에 교회 당국이 설정한「증거의 해」의 의미가 21세기를 넘어 불멸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심상태
◇1940년 서울 영동포 출생
◇68년 가톨릭대학 신학부졸업
◇오스트리아 인스부룩 대학교ㆍ독일뮌스터대학교ㆍ튀빙겐대학교에서 수학
◇75년 튀빙겐대학교에서 교의신학박사 학위취득
◇현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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