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주일미사에 가면서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가 미사포를 사야겠다기에 본당내의 성물판매점에 들렀다. 면사포처럼 고운 갖가지 견본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딸애는 갖고 다니기가 편하다는 이유로 그중 가장 작은것 하나를 골랐다. 하지만 미사중에 쓰고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좀더 큰 것이 어울리겠다는 생각과 함께 옛생각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속이 비치지 않는 흰천으로 미사수건을 만들었고 그것이 완전히 가려주었다. 때문에 뒤에서 보면 자기 마누라가 어디에 앉아있는지 조차 찾기 힘들지 않았던가.
그후 가벼운 합성섬유가 개발되면서 망사로된 미사수건이 나오긴했지만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때만 해도 신자들 사이에 적잖은 논란과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약 30여년전의 일인듯 하다. 어느 대학생이 경향잡지에 발표한 글을 보면 미사수건은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릴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손수건처럼 작은것이나 속이 비치는 그물같은 것은 꼴불견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신자들이 공감했고 그 의견을 숙연하게 받아들였던듯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위 면사포 미사수건이 차츰 늘어나더니 불과 몇 년 후에는 모든 자매들이 이용하게 되었으니 유행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시각은 정말 요사스럽기조차 하다. 오늘날 망사로된 미사수건은 분심이 생기니 갑갑한 흰천으로 가려줄 것을 고집하는 남성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지금쯤 환갑을 바라볼 당시의 그 대학생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요즘들어 또 다른 유행이 번지기 시작하고 있다. 다름아닌 옷 차림새이다. 여름이면 옆구리와 등까지 노출된 시원한 의상, 바지차림에 슬립퍼를 신은 모습이라든가 겨울철에는 요란한 색깔의 방한복을 그대로 입고있는 등산객들의 모습, 뿐만 아니라 미사포를 쓰지않으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도무지 분간못할 차림새 등 갖가지 패션이 성전안을 메우고 있다.
따라서 미사수건을 쓰는 목적도 옛날처럼 머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다.
이런 신자들의 옷차림을 보다 못한 본당신부님께서 어느 주일날 미사후『주일 미사에 나올때는 가진것 중에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나오시고 특히 자매님들은 여성다운 옷을 입으시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뵈옵는 자리에 옷차림을 멋대로 해서는 되겠느냐는 따끔한 충고를 하신 일이 있었다.
그렇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유행이 바뀌어도 런닝샤쓰 바람으로 미사에 나올수는 없지않는가!
신부님의 말씀때문인지 평소에 집에서 입던 청바지 차림으로 곧잘 미사에 나가곤 하던 아내가 요즈음에는 여성다운 옷차림을 하고 미사참례를 하곤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옷을 갈아 입는 시간이 너무 걸려서 미사에 늦겠다고 짜증을 내면 입을 만한 옷이 어디 있느냐고 불평을 늘어 놓으니 불쌍할손 남편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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