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ㆍ묻기조차 죄송스럽습니다. 그토록 억척스럽게 지키려던 땅과 돼지를 깡그리 처분하여 빚잔치를 하셨다는 소식, 그리고는 첩첩산골 하천부지를 소작하러 떠나셨다는 우울한 소식을 듣고는 그저 죄스럽고 자꾸 분한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종교인이 말했지요. 『사람은 목사ㆍ신부ㆍ중이 없어도 삽니다. 사람은 교사ㆍ지도자ㆍ정치꾼 없어도 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꾼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이런 이유로도「농자는 천하의 대본」이 틀림없지 않습니까? 이런 얘기마저 빚잔치를 한 최형에게는 비웃음으로 들리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똥값돼지 밥달라고 아우성인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밥」을 모시고 사는 놈으로서 이땅의 농사꾼에게 죄를 짓고 있구나 하고 느낄때가 자주있습니다. 국민 1인당 하루 먹는 쌀값이 2백 19원이라니 … .
언젠가 최형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농축산물, 뭣하나 해 볼게 있어야지요. 돼지나 똥값되면 주인사정 봐서라도 단식ㆍ절식하는 충성스런 돼지라도 있어야 할텐데 허허, 그런 때일수록 밥 더 달라고 꽥꽥 더 큰소리를 질러대니 참 환장할 지경입니다.
아, 거 뭐라더라! 그렇지, 수출입국이라 수출 잘되면 80년대는농민도 자가용을 굴릴거라고 사기치더니 … 농가호당 3백만원의 빚더미 차에 올라 타긴탔지요. 허허. 제일 만만한게 농사꾼인지 농축산물 마구 수입하니 국내농민들이 안 망할 수가 있나요? … 』
◆사기만 쳐온 선거공약
최형, 선거철이라, 이런 이런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굉장히 중요한 선거다. 집권세력이나 민주세력 모두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선거다. 이번 선거가 분단 40년의 역사에서 두차례 장기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던 54년, 67년 선거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느냐, 뛰어넘느냐하는 기로에 서있다』등등.
최형, 나는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줄곧 선거철만 되면 속이 상해요. 이번 선거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라와 겨례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의 의사를 적극 표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치쇼적인 선거는 양심상 거부해야 하는가? 우리의 역사는 왜 자꾸만 뒤틀릴까? …
최형, 빚잔치를 하고 벽촌 소작농으로 쫓겨난 최형에게는 나의 이같은 고민이 사치스러운 것일까요? 오랜 세월 권력과 관제언론은『정치는 정치인에게』라고 사기쳐 왔으니, 정치가 농민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깜박 잊을때가 많겠지요.
최형, 나는 오늘 알농사꾼인 최형과 두가지 얘길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부끄러운(?) 고백한가지 해야겠어요. 내가 그래도 이나라 지식인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데, 우리나라 헌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철에 새삼 확인했어요. 지금의 헌법과 유신헌법의 차이를 도통 알수가 없단 말입니다.
누가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이도 없고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사실도 본 일이 없단 말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인지? 알아들을 귀 있는 자만 독점적으로 알아듣고 있는 판국인지? …
최형. 또 한가지 얘기 나누고 싶은게 있어요. 선거철에 쏟아지는 숱한 공약말입니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 우선 농사꾼과 관련되는 공약만 생각하더라도 속에 천불이 날겁니다. 쏟아지는 선심공약들이 하나같이 70년대, 그리고 4ㆍ5년전에 듣던 것과 꼭 같지 않습니까? 우선 농사꾼과 관계되는 것 몇가지를 말해볼까요.
85년까지 농어민 모두에 대한 국가 비용의 소송대행제실시, 기상재해나 병충해로 인한 농업재해보상제 실시, 도시 계획입안시 주민참여제도화, 농축산물수입억제, 농ㆍ축ㆍ수협을 조합원 위주로 개편, 중학까지 의무교육제 확대실시, 복지농촌육성 2천년에 채권이라 …
◆농민 스스로 자기 권리 쟁취해야
최형. 언젠가 최형이 말씀했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그누가 있어 농민문제를 해결해준단 말입니까? 누가 해주길 바라는 것은 얌체지요. 가능성도 전혀 없구요. 농민문제는 농민 스스로가 쟁취해가야 합니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다.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주역 역시 가난하고 울고 내어쫓긴 민중이다』이런 얘기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최형. 이번 선거가 정말 중요한 선거라면 개인적으로 거부하고말 그러것이 아니라면 분명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공인(公人)이 공사(公事)에 대해 거짓말하거나 죄를 짓는 것은 역사와 겨례에 원죄를 끼치는 것이기에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에게 거짓과 불의와 폭력을 일삼는 만행을 용납해서는 공범자일 수 밖에 없게 되지 않습니까? 약한 민중을 거역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정당과 출마자, 반농민적인 정책과 반농민적 언행을 예사로하는 정당과 출마자에게는 - 그가 비록 친척이고 같은 교회신자라도 - 표를 주지 말아야 할겁니다. 최형, 개표과정도 주시해야겠지만 우선 투표과정에서, 이 겨레 민주통일을 염원하는 자세로 우리의 선거권을 당당하게 행사했으면 하는 것이 내가 최형에게 나누고 싶은 얘깁니다.
최형, 을축년 새로운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는 새해를 맞아, 주님 안에 용기와 희망을 체험하면서, 민주통일을 향한 새삽질을 사작합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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