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도 88、음식점도、술집도、미장원도、아이들이 즐겨먹는 과자이름도 모두가 88이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신문과 라디오 TV 가히 우리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모두가 88과 관계된 것들이 돌림병처럼 이 사회를 뒤덮고있었다. 내시각과 청각에 이상 야릇한 감흥을불러일으키는 88 (팔팔) 이라는 이 상징적 언어가 한때 내 의식속에 괴물딱지처럼 붙어 꿈틀거려 괴로워 한적이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희망을 이 상징적 언어가 매도하고 탈추해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마다 나의 내면에서는 이상야릇한 분노가 일기도 했다.
『상징 (symbol) 에서 실패한자는 결코 공산혁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한 모택동의 선언도 이제는 낡은 구호가 아니다. 실로 대중을 이끌고가는 상징들의 가공할만한 힘과 역할을 부인할 사람도 이제 아무도 없을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폭력으로 등장하던 그 상징이 고개를 숙이는가 했더니 또 다른 物神의 상징들이 우리주위에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2000년대」라는 새로운 상징이다. 화려하고 눈부신 2000년대、굶주린 이도 괴로와하는 이도 없을 것만 같은 낙원같은 2000년대、아름다운 꿈과 희망으로 아로 새겨진 새로운 상징언어가 바로「2000년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인도 사람들이 발견하여 현대문명에 이바지 했던 0이라는 숫자가 3개씩이나 붙어있는「2000년대」의 설계를 듣노라면 웬지 가슴이 설렌다.
실로 다가오는 세기를 향하여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구비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앞에 제시되는 그 설계는 오늘의 實在를 토대로 해야한다는 당연한 상식 앞에서 나는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실재를 무시한 예언이 될 수 없듯이 미래에 대한 설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찰저하게 은폐되고 위장된 實在위에서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언어로 발표되는 미래의 설계는 하나의 幻想이 될수있다. 환상이란 참으로 무서운 질병과도 같은 것이다. 더우기 집단적인 환상이 인간정신을 얼마나 병들게 했던것인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질서를 강조했던 뭇솔리니 정권이 가장 무질서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리고 집단적인 환상으로 꿈의 미래를 설계했던 나찌르정권의 말로를 우리는 주시해야할것이다. 實在를 망각하거나 은폐하는 사회가 건전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질서는 편한것、질서를 지키자』. 과연 그렇다. 하지만 쫓기는 사람들에게 질서로 얻을 수 있는 평안은 하나의 幻想에 불과하다. 그 무엇에 우리가 쫓기고 있는지. 그 實在를 밝혀내고、우리 서로 질서를 얘기하자.
■지금까지 부산중앙본당 사목회부회장 박자근씨께서 소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화 부터는 성베네딕또 수도회 조광호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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