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가 남을 웃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코미디가 아니다. 남을 웃기지 못할 뿐 아니라 기분 나쁘게 하는 코미디가 있다면 그것은「코미디의 파국」이다. 우리나라 TV에 나오는 코미디를 보다보면「재미없다」를 넘어서서 「기분이 나빠지는」경험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코미디가 곧잘「저질 시비」에 말려들곤 하는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약한계층, 코미디對象 될수밖에
그런데 막상 TV의 코미디 담당자나 코미디언 자신의 항변을 들어보면 딱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도『우리나라에서는 마땅하게 다룰 직업이 없다』는 하소연이 공감을 준다. 「코미디의 소재로 등장시킬 직업이 마땅치 않다」고 하는 것은 해당「집단」들의 반응과 압력이 지나치게 거세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은 대체로 자신이 가진 직업을 타인이 희화화 (戱畵化) 하거나 비판하는데 대해 저항감을 갖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남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용훼하는 것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가령 의사를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치사、의사라는 직업을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불쾌하게 여길 것이라는 것이 코미디 담당자의 확신이다. 의사만 그런 것도 안고 모든 직업인이 그렇다는 뜻이다. 즉각 구체적인 압력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 코미디의 단골로 등장하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가장 무력한 계층이거나 번죄집단이 되기마련이다. 현직 대통령의 흉내를 잘낸다고 해서 그 대통령 취임행사에 초대받아 고급한 정치풍자를 해내는 미국의 코미디언과는「여건」에서 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빗발친 교사들의 항의
코미디 이야기가 장황해졌지만. 하필 코미디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들 매스컴종사자는「직업인의 호칭」에 대해서 각별한 조심성을 갖는 것이 버릇이다. 잠시 주의를 소홀히 하다가는 어디서 항의의 삿대질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간호보조원」이라야 맞는 것을 무심하게「간호원」이라고 신문에 썼다가는 간호원들의 단체로부터 격렬한 정정요구를 받는다. 「학원강사」라야 맞는 것을 무심하게 「교사」라고 썼다가는 무수한 교사들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아야 한다. 틀리게 쓴 것이 잘못이므로 항의를 받아도 할말이 없지만、항의의 정도가 깜짝 놀랄만큼 거친데 당혹하게 된다.
며칠전에 내가 겪은 일의 하나가 바로 「교사」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 사회를 바짝 긴장시킨 이른바 독극물 협박의 범인이 체포되었을 때、그 범인은 대학을 중퇴하고「학원강사」와「전수학교교사」를 전전한 인텔리로 판명되었고, 신문은 제목에서 그가 「교사출신」이라는 점을 크게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자 신문사에는 하루종일「강사출신」을 「교사출신」이라고 잘못 표현함으로써 전체 「교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도대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는「교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상식이 아니냐. 「강사」와「교사」도 구별못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신문을 만들고있느냐. 범인치고도 극악한 반사회적 범인을 굳이「교사」라고 표현한 저의가 어디에 있느냐….
그 전화들의 대부분은 이쪽의 해명이나 사과를 들을 생각도 없이 일방적으로 「퍼붓는」감정의 격앙을 보인다. 대호나 설득의 여지가 없다. 여유가 없으니 유머가 끼어들수도 없다. 우리나라 TV의 단골 소재가 걸인이나「지능이 모자라는 듯한 사람」으로 한정되는 까닭을 알 수 있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잘못은 정확하게 쓰지않은 쪽에 있음이 분명하겠지만. 그 잘못에 대한 반응이 지나치게 각박하고 과민한 것이다.
◆따뜻한시각 ㆍ 넓은 생각 아쉬워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저런 사정도 있는 것이다.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남들이 우러르는 유명 인사들 가운데에도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세상에 범죄인으로 드러나는 사람만 범죄인 인것도 아닐 것이다. 신앙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필요한 것은 따뜻한 시각 (視角)、여유있는 생각이다. 범죄인이라고해서、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이라고해서 냉혹하게 단죄 (斷罪)만을 서둘일도 아닐것이다.
우리들의 생각에 여유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들에게 닥치는 사건 마다에서 보다 수월하게 그안에 숨겨진 뜻을 알아볼 수가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쪽이다.
직업은 소명 (召命)이라고 한다. 「부르심」으로서의 직업관이 중요한 것이지 지나친 집단의식이나 피해의식, 또는 배타적인 권위위식은 사회발전을 위해 조금도 중요한 일이 못될 것이다. 특히 문벌ㆍ족벌ㆍ학벌 따위만을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이기에 여유는 더욱 없다. 사극 (史劇)의 작가는 코미디언이 특정 직업인을 소재로하기 어려워하듯이 특정가문의 후손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교회 공동체는 어떤 「집단」인지도 생각해 볼만하다. 우리는 지금 남을 웃기지도 못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는 형편은 혹시 아닌가. 우리에게 과연 남을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우리 스스로남의 평가에 과민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에게 과연 남을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우리 스스로 남의 평가에 과민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일방적인 고함이나 악을 쓰는 대신에 차근차근 설득하고 대화를 나누는가.
얼마전에는「성당털이 강도」가 형제의 하나였다고 하고、또 어떤 대학의 「프락치」가 역시 그랬다고 하는데、이런 사건들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무엇이었을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가 아닌가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