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본당을 다닐적 사순 첫 주일 예비자 교리시간이었다.
미술을 공부하셨다는 지도수녀님께서 갑자기 수업받는 모든 분들에게 즉석 과제를 내주셨다. 크레용 하나와 이면에 내용이 적힌 16절지 모조지 한장씩을 나누어 주시면서 5분이내에 각자가 그리고 싶은 것을 즉흥적으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이론만으로 진행되던 수업이라서 남녀노소 70여명이나 되는 모든 분들은 숨을 죽이면서 수녀님의 의도도 모르는채 무조건 그렸다. 시간이 되자 이름을 쓰지않은 채 걷어오라고 하셨다.
잠시후, 그 많은 과제물을 보더니『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하는 행동을 눈여겨 보십시오!』하시더니 그림을 한장씩 치켜올려 모든 분들의 시선을 집중케 했다.
신부님 ㆍ 수녀님 ㆍ 제대 ㆍ 아파트 ㆍ 자동차 ㆍ 논두렁 ㆍ 육교 ㆍ 책 ㆍ 묵주 ㆍ 건물 등등 그림의 내용이 가지각색이었다. 그런데 수녀님은 그것을 하나하나씩 보신 후 어떤 것은 칠판에 붙여놓고 어떤 것은 이내 떫다는 표정 아니『이것도 그림이냐?』하는 투의 경멸이 깃든 표정을 짓기가 무섭게 그만 북북 찢어버린는 것이 아닌가? 또 한장 한장 계속했다.
모두들 찬물을 끼얹었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서 어처구니 없어했다. 잠시후 수녀님은 조금 전의 감정을 진정하고나서『자, 지금부터 저의 행동에 대해서 아주 솔직한 반응들을 발표해 보십시오』하셨다.
『기분이 무척 나빴습니다. 제것을 찢어 버려서요』
한결같이 즉흥적인 원망의 감을 그대로 나타냈다. 듣고 계시던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진지하게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셔서 당신의 모든 자존심 따위를 버리고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 형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5분내에 얄팍한 종이에 즉흥적으로 그린 것 하나 갖고서 잘 그렸다는 인정이나 받기를 원하셨다니, 참 소심합니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사소한 일상생활 중에 자리잡고있는 우리 허물의 실상을 깨닫게 해주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