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이름했던가. 요사이처럼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사람이 혼자 살 수는 없고 얼굴 모양이 하나같이 다르듯이 사물을 두고 생각하는 모습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뜻을 모아 한 가지 일을 하자면 선거라는 것이 필요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믿을 수 없던 후보자들
한 달여를 두고 신문마다 TV마다의 선거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입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답답한 노릇이 사람이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첫째로는 이 사람이 한말을 저 사람이 깡그리 뒤집어 놓는가하면 또 그 사람은 저 사람의 말이 엉터리란다. 모두 일리가 있다. 이정도 만으로도 나는 벌써 결정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지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심한 경우는 맘을 헐뜯기도 하고 거짓말도 예사로 하는 모양이다. 뇌물의 성격이 농후한금 전공세도 있는 모양이다. 엄동설한에 돗자리도 안깐 생마당에서 양복을 입은채 큰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저짓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릇인가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정치적인 동물、진정코 동물과 다를바가 없단 말인가.
◆황소들의 선거 방법
가축을 기르는 것을 업으로하는 입장이라 또 아전인수격으로 생각을 이어간다. 동물들로 선거를 하는가. 선거를 한다면 선출된 그 동물 선량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십여년전 한우의 비육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할 때 제일 의심이 가는 것이 농가에서 한마리씩 따로 기르던 한우를 집단으로 사육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였다. 빨리 빨리 사료를 먹고 살이 북북 쪄야 할텐데 황소들을 한울타리에 넣어두어 서로 싸움만하면 어쩔까 하고 고심들을 했다. 사계의 권위있는 학자와 의논도 해보았고 문헌도 찾아보았지만 확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을 갖고 집단사육을 감행해서 성공을 거둔 근거는 지극히 간단한 원칙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에게는 힘의 우위순위가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싸움의 근원이되는 원인이 먹을 것이 부족할 때、종족보존의 본능에서 오는 성적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특히 격렬해진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료를 언제나 먹을수 있도록 제공해 주었고 거세를 하기도 하였다.
여러시장에서 사 온 황소들을 아예 안전한 울타리안에서 처음부터 싸움을 시켜 우열의 순위를 결정토록 했다. 제인 힘센 놈이 정해지면 이 순위는 비육이 끝나 도살장에 출하될 때까지 그 서열에 변함이 없었다. 다시는 처음과 같은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들은 그 질서 속에서 살이 쪄갔다. 황소들의 선거방법이다. 투표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사를 걸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비굴한 점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나 기발한 마타도어 전술도 물론 쓰지 않았다. 힘이 모자라면 깨끗이 항복을 했고 항복을 했으면 보스를 따랐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유의 예를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깽집단이나 깡패들의 사회에서이다. 두목은 명확히 힘의 우위를 점한다. 엄격한 질서가 유지되고 그들 나름대로의 신의가 놀랄만큼 잘 지켜진다고 한다. 다분히 동물적인 속성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가 된다.
◆동물의 선거보다 못해서야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하는 선거가 동물이 하는 짓과 별로 다를 것이 없대서야 어찌 말이 되겠는가.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말을 사람이 믿을 수가 있어야 한다.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수 있는 신뢰의 사회가 이룩되어져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나는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우리가 가질수 있는 재화가 무엇을 위한것이며 우리가 누릴수 있는 명성과 권좌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만은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한 마음. 결코 내 이웃이 나를 위한 이용의 대상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비록 실천이야 못할지라도 하도 생각마저 바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기에 하느님을 믿기에 적어도 생각만은 올바르게 할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그것이 보증수표가 될 수 없음은 우리의 짧은 선거 역사에서도 여러 번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죄인들의 모임인 교회 이기에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다. 가난한 마음은 결코 재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가난한 마음、명예에 대한 가난한 마음、학문에게서 조차 가난한 마음、심지어 먹고 마시는 일상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가난하고 겸허한 마음이 요구되는 세태이기도 하다.
◆새 선량 위해 기도하는 일 남아
이젠 선거도 끝났다. 국정을 맡을 선량들도 결정이 되었다. 느닷없이 운동장에서 큰절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당선이 되지 않을 테니까 모두들 공약을 한대로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나라일을 하리라 믿는다. 이제 남은일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뿐이다. 하느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천주교 신자이기에 그에 합당치 못한 행동을 하면 욕을 먹는다. 정치하는 사람이기에 거짓말을 하면 큰욕을 먹는다. 정치 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잘못이 그에게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자가 어쩌고 저쩌고하면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할말이 없어진다. 특히 나 같은 신자가 신부가 어쩌고 저쩌고、물론 이유가 없는게 아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여된 희난과 비판이 하느님 나라가 이 땅 위에도 이루어 지게 하는데 얼만만큼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때문에 야훼께 이렇게 간청을 했다. 『소돔성에 죄없는 사람 오십명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이 죄없는 의인의 수는 45명에서 다시 40명 다시 30명 그리고 20명 다시 열명까지로 줄어 들었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이 나라에 살고있는 몇사람의 진정코 죄없는 의인의 덕일 수 밖에 없다. 선거 이야길 했다 정계에도 교육계에도 성당에도 절에도 제발 한사람의 의인이라도 더 많이 태어나게 기도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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