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가 뭔지를 알겠는가
『…우익이니 좌익이니 야단이었지만、농사짓는 놈들이야 세금 쬐끔 내라하고 쌀값만 조금 좋으면 그만 아닌가…. 전쟁이 터진께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국방군에 협조했다고 죽고、 공산당에 협조했다고 죽고、 공산당 하지 않은 사람도 공산당으로 몰려죽고 잡혀가고 야단이었네. 우리가 농사나 지을수 있제、 뭐 공산주의가 뭔가를 알겠는가…우리 역사에서 언제 한번 백성이 힘을 가졌을때 있었는가? 총이나 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했제. 농사꾼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못하겠습니다 하겠어、 그랬다가는 빽다구도 못찾을 것인디….』(운기현이 채록한 「어느농부의 한평생」에서)
◆부역한 죄로 평생 감옥살이를
경북 상주가 고향이라던 소작농출신 할아버지는 징역살이를 잘못해서인지 허리부분이 헐어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던 분이었습니다. 6ㆍ25전쟁때 피난을 못갔고 따라서 공산당이 시키는 부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복 직후 총소리가 채 멎기도전인 1952년, 그 순박한 할아버지는 엄청난 죄인이 되어있었고、 상주재판소에서 잡혀온 사람들을 두줄로 세우더니『앞줄은 사형 뒷줄은 무기…』그 할아버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뒷줄에 분류된 탓(?)으로 평생 옥살이 명에를 지게되었습니다.
그후 십수년 징역살이 중 중병이들어 병보석으로 출감되었는데 찾아간 고향에는 반겨줄 가족 한사람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고향사람마저 빨갱이라 수근거리면서 뱀보듯 놀라며 외면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맹세코 공산주의가 뭔지를 모른다、 자기는 절대로 빨갱이가 아니다、 절규해도 곧이 듣든 사람이 한사람도 없더라는것이었습니다. 뿌리뽑힌 그 할아버지는 그 후 엿장수가 되어 오늘은 이 골목 내일은 저 여인숙을 전전하며 가족도 찾을 겸해서 몇년을 헤매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던중 언제날 주민등록증 일제 갱신인가 뭔가가 있을때 고향이라고 들렀다가 다시 덜컹 쇠고랑이를 차게되었고 20년이 넘도록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잡으면서 애소하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신부님,하느님께 맹세코 말씀드립니다만、저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저는 공산주의가 뭔가를 전혀 모르는 무식쟁이 농사꾼입니다. 총칼들고 시키니까 시키는대로 부역했을 뿐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4ㆍ19직후인가 그때 우리같이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는 법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찌된 셈인지、 애써주는 가족이 없어서인지 저는 그 법의 혜택을 받을수 없는 건지요?...』
◆국제재판소통해 저축금요청(?)
박대통령 피살직후였습니다. 원산이 고향이라던 중풍들린 할아버지. 원산에서 전문학교 철학교수하다가 남파된 간첩이었던 할아버지 아야기입니다. 전향을 했다던 그 할아버지는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던 예비자였습니다. 이 할아버지 역시 20여년 징역살이를 하는 동안 편지 한장、 영치금 한푼 받아본적이 없는 그런 분들중에 한분이였습니다. 어느날 운동시간에 나를 손짓해 보르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까 글판(교도소에는 연필과 종이를 쓰지 못하게 하므로 베니어조각、 천조각、빠다、투명빠닥종이로 만든 글 쓰는판을 사용한다. 빠닥종이 위에 글을 쓰면 쓰여지고 빠닥 종이를 들면 지워지는 …)에 쓰인 복잡한 수치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계산을 한것이냐고 묻는 나에게 그 중풍병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이건 제가 이북에 있을때 저금했던 원금과 이자 계산을 해본 것입니다.약 2만달러가 되는데、 이젠 독재자가 죽어 세상이 달라졌으니 국제 재판소를 통해서라도 이돈을 찾을수 없을까요?』
◆따뜻했던 간첩할아버지의 손
인쇄공으로 살다가 남파된 독종(?)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그리스도교를 지독히 미워하던 분이셨교、 심지어 같은 방에 누가 성경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악착같이 방해하던 분이라했습니다.
60년대인가 그때 사상범을 강제로 전향시키기 위해 깡패방에 넣어 그 지독한 폭행을 당했을때도 전향을 끝내 하지 않았다던 독종(?)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그리스도교를 그토록 저주하던 공산주의자 할아버지와 신부가 감옥에서 만나것입니다.신부인 나에게 무척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이 독종(?)할아버지 상식으로는 신부가 양심범-사상범으로 감옥에 들어온다는 것은 전혀 상상밖의 사건이었던가 봅니다.내가 그 할아버지들을 남겨두고 출옥하던 날 새벽、 입던 내복을 미처 빨지도 못한채 뭉쳐서 창살사이로 그 독종(?)할아버지에게 건네 드렸습니다.그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읍니다.『신부님、 함께 정을 나누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손을 꼬옥 쥐신 그 독종(?)할아버지의 손은 내 손보다 훨씬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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