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의 모임에 갔을 때이다. 성당에서 사무장을 하는 사촌 동생의 아들이 훌쩍 컸다. 고2라고 하는데 주일 미사는 나가는지?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그의 아빠가 와서 애꿎은 아이를 야단치며 데리고 간다. 눈치인즉슨 공부를 해야 할 아이에게 신앙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그러는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 사무장이 아닌가? 성당 사무장이라는 사람이 그런데 아이를 둔 다른 신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있다. 졸업 논문을 쓰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결혼을 앞둔 젊은이도 있을 것인데 그가 본당의 교사라면 어떠하겠는가? 물론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교사를 그만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집중하기 좋을 테니까 말이다. 큰일에 직면하면 작은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선택이 참으로 옳은 것인지 먼저 기도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갈등은 기도의 순간이고 나중에 은총의 순간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하느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닌가? 그분께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기회도 되지 않는가? 다음에 예화는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사막을 건너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였다. 자기 코가 석 자인데 쓰러진 사람을 돌볼 여유가 있겠는가? 물론 그냥 갔고 뒤에 오던 사람도 쓰러진 사람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등에 업혔다. 그리고 얼마를 가다 보니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어 울상을 지었는데 다행히 그 사람은 숨이 끊어져 있었고 바로 앞서 가던 사람이었다. 자기만 살겠다고 가더니 먼저 죽고 말았다. 만일 그도 살았다면 뒤에 오는 두 사람에게 갈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막연히 길을 걷다 보니 저 너머 지평선에 찍혀 있는 희미한 점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신기루인 줄 알았는데 점점 커지더니 낙타가 보였고 대상의 무리가 다가왔다.
일단 이야기를 접고 또 다른 예로 폭풍 속에 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배가 풍랑에 직면하게 되면 무엇이든 집어 던져 무게를 덜게 된다. 쉽게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남아 있는 것은 아깝게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누구의 삶이나 폭풍 속에 삶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 속에 산다면 태풍 속에 살아도 평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태풍 속에서도 ‘태풍의 눈’이 있으니까 말이다.
믿음은 키워져야 할 삶이고 남을 위한 봉사는 숨 쉬는 숨구멍, 하늘로부터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아닐까? 봉사하다가 조금 덜 하려고 하는 것은 지혜로울 수가 있다. 그러나 모두 다 집어 던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말을 몰기 위해서는 고삐와 안장, 박차. 그런 것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항해를 위해서는 작은 시간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 봉사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를 위한 시간에서 벗어나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다가가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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