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광복과 더불어 미소군(美蘇軍)의 분할점령으로 인해 남북이 갈라져 제각기 다른 정치이념과 제도를 이식 받게 됐다. 남북 간에 이식된 서로 다른 정치제도는 처음부터 충돌해 지금까지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70년 동안 남북한 사회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와 함께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 그에 따른 직업구조 및 계층구조의 변화, 생활관습의 변화 등 광범위한 사회, 문화적 변화를 서로 다르게 경험했다. 또한 대립적인 이질화를 심화시켜 왔다. 이러한 갈등요인은 향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하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를 통한 화해다. 남북한 주민 상호간에 깊이 형성된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용서하며 화해하는 것이 절실하다.
일치주간을 지내는 지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년 전 1995년 5월 25일에 반포한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요한 17,11)라는 회칙을 다시 상기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운동’에 접목하면 좋을 듯하다. 9항에서 하나됨의 숭고한 의무가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께서 그 수난의 시간에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요한 17,21) 하고 기도하셨던 이유를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부여해 주셨고, 모든 사람들을 그 안에 포용하고자 하신 이 일치는 부수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명 바로 핵심에 자리 잡는 것”이라 설명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일치를 원하시기 때문에 교회를 원하고 바로 이 일치 안에서 하느님 사랑(Agape)의 깊이가 온전히 드러난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일치를 갈망한다는 뜻이고, 일치를 갈망한다는 것은 교회를 갈망한다는 뜻”이며 “교회를 갈망한다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은총의 친교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기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소서’ 하신 기도의 뜻”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갈라져 있는 우리 겨레가 하나가 되는 통일은, 하느님과 은총의 친교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교회의 본질이 ‘화해의 성사’라는 점에서 분단된 민족 사회를 화해시키고 하나의 통합된 사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다.
15항에서는 일치를 향한 여정의 실천으로 들어서면서 무엇보다도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시면서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으며, 이어서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촉구하셨다. 이 메시아적 선포와 회개의 촉구는 모든 새로운 시작의 본질적 요소, 곧 교회의 구원 여정의 모든 단계에서 복음화를 위한 근본 요구를 가리킨다. “그 회개란 곧 형제적 사랑을 심각하게 해치는 배타행위, 용서의 거부, 오만, 상대편을 단죄하는 복음에 어긋나는 고집,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경멸 등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갈라져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는 우리를 반성하고 사랑으로 화해의 손길을 서로에게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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