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새해를 맞아 나는 일기 끝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갖고 싶은 것 - Audio(성능이 좀 좋은 것, 공부방 아이들 영어 듣기 공부에 필요해서), 작은 책장 하나, 베란다에 놓을 작은 차 탁자와 의자 두 개, 그리고 스탠드 조명등, 화분 몇 개, 붓걸이, 벼루, 에어콘(공부방 아이들 시원하게 해주고 싶어서), 흔들의자(엄마가 가끔 베란다에서 바깥 경치 내려다 보실 때 편히 앉으시라고).
▲하고 싶은 것 - 서예 학원 다니기, 새벽에 1시간 정도 걷기, 한 달에 한 번 여행하기, 초·중학생 공부 가르치기, 운전 도로 연수 받기.
지난해 12월 어느날 새벽, 책장 정리를 하다가 내가 20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을 보게 되었다. 원고지를 너미며 읽다가 전율이 일었다. 내가 적어 놓았던 것들이 다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닌가!
5년 전까지 나는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초·중학생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쳤고, 20년 전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자리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갖추어져 있는데, 엄마는 9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한참동안 울었다.
1993년 영세를 하고 이듬해 일산으로 이사온 나는 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1년 과정의 창세기 공부를 마치면서 감회와 함께, 새해 계획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그 후 해마다 탈출기, 마르코 복음, 요한 복음을 차례로 공부했다.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말씀 공부와 묵상을 통해서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해 주셨고,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게 되었다.
버스 전복 사고로 왼팔을 잃고 살아난 것도 행운이요, 내가 힘들 때마다 신비스런 만남으로 위로자를 보내주시어 고통을 덜어 주셨으며, 인내할 수 있는 끈기와 기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신 분도 하느님이심을 입으로 시인하게 되었다.
그 후 사도행전 공부를 마친 다음 정릉수녀원에서 말씀 봉사자 선서를 했다.
2015년 일흔을 코앞에 둔 나는 복지관 문해교사로, 성당에서 교리봉사자, 말씀봉사자로 활동하며 문화의 집에서 서예 공부도 하고 있다.
을미년 새해 첫날, 나는 올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보았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신앙교육원 졸업 성구로 택한 성경 구절을 붓글씨로 써서 거실에 걸어 놓는 것, 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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