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사제 수도자 인사이동철이 되면서 하루는 장상이 나를 부르더니 살레시오 수도회 차원에서 통일에 대비해 북한의 청소년을 위한 사목준비와 관련한 소임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을 수락하면서 아이들과 신학생들이 한 울타리에 살고 있는 양성공동체를 떠나 현재 사목을 맡게 됐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면서 공교롭게도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회담 테이블에 놓여 있었는데 김정일과 함께 앉아 있지 않는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왼쪽 바로 옆에 앉아서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시라면 감히 있을 수도 없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생생한 만남에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지만, 나는 그와 부담 없이 몇 마디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김정일에게 갑자기 “이렇게 살면 되겠어요?”라고 테이블을 치며 호통을 쳤다. 그런데 그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조용한 웃음을 띠며 나의 말을 묵묵히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는데 다른 이야기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내가 호통을 치며 했던 말마디만 생각이 난다.
꿈에서 깼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어 곰곰이 내 나름대로 꿈에 대한 생각을 정리 해봤다. 첫째, 장상이 제안한 탈북자 사목에 대해 내가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둘째,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서 나름대로 안타까움과 불만을 가지고 있고, 셋째, 사목활동과 관련해서 기회가 되면 북한에 한 번 가보고 싶고, 그래서 불가능하지만 김정일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진실을 말해주면 좋겠다 등등의 여러 생각들이 아마 그 꿈에 녹아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면서 나머지 시간을 그냥 뜬 눈으로 지새며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중에 한가지, 김정일이 얼마 가지 않아 죽으면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게 됐고, 그 외 다른 나머지 것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이룰 수 있는 희망으로 남아 있다.
그때 소임을 받고 활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탈북자들을 만난 지 횟수로 5년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 탈북자들을 만나기 전에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내 나름대로의 선입견을 통해 쌓아진 것들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가족들을 만나는 것 같이 친근하고 정겹다. 현재 2만7000여 명의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나름대로 힘겹게 정착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수많은 세월을 너무도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지내다 왔으니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옮겨 심은 나무다.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몸살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들의 인내심 있는 배려와 이해가 함께할 때 서로가 통일을 미리 살아보는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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