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에 메리놀회 시노트 신부님이 돌아가셨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을 세상에 알리다가 박정희 정권에게 추방당한 시노트 신부님, 한국을 잊지 못해 몇 년 전에 다시 돌아오셨다가 그렇게 한국사회에 커다란 선물을 주고 조용히 가셨다.
전미카엘 신부님도 그렇게 조용히 가셨다. J.O.C회원들과 전미카엘 신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1968년 강화도 삼도직물 사건은 한국 주교회의가 한국의 노동상황에 대해 공식적인 선언문을 발표하며 노동문제에 개입한 첫 번째 사례로서 이후 교회가 노동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니 그들의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 지학순 주교님이 남겨주신 선물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다. 사제단이 있게 하신 지학순 주교님은 한국사회에 인권과 민주화를 선물로 주고 가셨다. 지학순 주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의구현사제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궤적은 천주교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세상에 던진 선물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데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인 1997년에 IMF라는 전대미문의 놀라운 국가 사태가 일어났다. 이의 해결은 21세기로 넘겨지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미있는 예고를 던져주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 채 사라졌다. 즉, 20세기가 독재와 맞서 민주화를 이루어낸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자본주의에 맞서 분배의 정의를 이루어내어야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20세기에는 사명감과 열정으로 살아온 분들의 선물들이 있었지만, 이제 21세기를 사는 교회의 구성원들은 세상과 후손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남겨줄 것인가? 그 선물로 우람한 규모를 자랑하는 교회건축물들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사회정의를 그렇게 쉽게 폐기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왜냐면 사회정의가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경제정의도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으로,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는 수례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인 것이다.
성서 새로 읽기! 그것은 20세기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었던 신학적 지평을 넓혀준 새로운 태도의 발견이었다. 왜곡된 시대를 꿰뚫어 진실과 정의로 바로 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비틀어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해방신학과 여성신학, 아시아신학 등 새로운 신학의 결과들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이제 경제의 이름으로 풀어야 하는 21세기를 변화시키는 태도로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발견하는 영성’이란 ‘성서 새로 읽기’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비틀어보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경제는 영성으로 푸는 것이 합당하니, 자발적인 가난의 영성이야말로 비정하고 이기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바로잡는 열쇠가 아니겠는가. 즉, 예수님의 경제원리로 세상을 비틀어볼 때 뒤엉켜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인간존재의 추락을 막는 단초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우리신학연구소를 비롯한 평신도 기관들이 영성의 재발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영성이 성직자, 수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은 당연하다. 새로운 영성의 개발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에 남겨야 할 선물을 찾아보자.
부산교구 로사리오의 집 관장 조욱종 신부는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과, 노동사목, 농촌사목 담당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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