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기사를 읽은 기억이 문득 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최영순 연구원이 일반인 1500명을 대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알고있다’는 응답은 39.5%였다.
간호사가 된지가 내년이면 30년이 되는 나조차도 불과 몇 년 전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으로 근무지가 이동되어서야 처음 호스피스를 접하고서 조금씩 알아가는 정도이니, 일반 시민들이야 오죽하랴.
지금까지 간호사로서 소명을 가지고 응급실, 내·외과병동, 외래병동 등에서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환우 곁을 지켜왔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기억보다는 오히려 어려운 환경이나 새로운 경험들이 매 순간 흥미를 돋우어 일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주니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간호사로서 환우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 안에서 많은 보람을 느끼며 지내온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긴 시간이었지만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무슨 일이든 해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하지만 이곳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으로 근무지가 바뀐 초기에는 말기암 환우들 앞에 무능력한 스스로에게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 분들과 함께하는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한계를 절실히 체감하면서 부담은 몇 배로 커졌다.
그러던 시간이 차츰 지나자 부담보다는 이런 일상들이 어느 순간 무덤덤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문득 이렇게 감정이 무뎌져가는 자신을 돌아보곤 스스로 놀라 간호사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분명 일반병동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죽음과 가까이하면서 무심결에 자기방어가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장 속상할 때는 함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말기암 환우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난 뒤다. 속수무책으로 그분들은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시간도, 충분히 편안하게 쉬실 여유도 없이 서둘러 가버리셨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너무 야속하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아직까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일반 사회에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의료인들조차도 인식이 부족하여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두고 잠시 머무는 곳, 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오는 곳은 맞지만 분명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과정에 지친 환우분들이 그동안 간절히 원했던 행복한 일들을 이곳에서는 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부부의 아름다운 이별이 생각난다.
자신의 병상을 지키며 보호자용 침대에서 쪽잠을 자던 부인과 함께 원예프로그램에 참석한 그 환우는 예쁜 꽃바구니를 만들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여보 사랑해요”를 서툰 솜씨지만 직접 만든 꽃바구니에 새겨 전하면서 함께 자녀들을 키우며 어렵게 보낸 지난 40여 년의 시간을 회상하는 모습이 진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분들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런 가슴 벅찬 사랑의 시간을, 과연 죽음을 앞두고 체험할 수 있었을까?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은 사별의 슬픔이 가슴이 메이도록 아프지만,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며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래서 홀로 남아 살아야하는 힘든 시간이지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남편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씩씩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을 앞두고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므로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사별을 소중한 마지막 선물로 마련해 드리고 싶다.
앞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도처에 이루어져 보다 많은 말기암 환우들과 가족들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치료의 한계점에 도달한 환우들이 서둘러 완화의료로 치료방향을 돌림으로써 여생동안 가족들과 함께하는 편안한 임종 준비와 더불어 가족들 역시 사별 후 겪게 될 슬픔이 최소화 되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환우와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을 우리가 덜어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완화의료는 이런 것이 아닐까? 암성 통증이나 환우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어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주고, 가족들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도와드리는 천사의 손길.
나의 병동에서의 하루하루가 은총이 가득한 풍요로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한 분이라도 더 많은 환우와 가족들과 함께 아름다운 길로 동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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