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을 만나면서 처음에 몇 가지 당황스럽고 웃기는 일이 있었다. 먹을 것을 권유했는데 퉁명스럽게 “일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언어 습관으로 보면 ‘기분이 나쁘니 당신과 상대하고 싶지 않다. 관심 없다. 신경쓰지 마라’는 뜻으로 들렸다. 더구나 표정도 무뚝뚝하고 억양도 거친데다가 말도 빨라서 내 귀를 의심하면서도 나에게 무슨 안 좋은 감정을 느꼈나 싶어 여간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이 말이 정중한 사양의 표현인 “괜찮습니다”라는 의미임을 알았을 때는 그런 불쾌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 보통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신시있다 허리가 아픕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신발 신을 때 불편한 자세로 신었나 봐요” 그랬더니, 그런 뜻이 아니고 ‘괜히 별 이유도 없이 가만히 있는데 허리가 아프다’란 뜻이란다. 또 낙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세발낙지를 말하는 줄 알고 우리처럼 칼로 다져서 참기름을 쳐서 먹느냐고 물었더니 생소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른 오징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신 우리가 먹는 세발낙지는 오징어라고 한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되면서 웃음도 나오고 의아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잔치 국수집에 가서 따뜻한 멸치국수를 시켰더니 난처한 표정을 짓기에 왜 그런가 알고 봤더니 냉면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쓰는 ‘상호간에’라는 표현이 ‘호상간에’로, ‘멱살’은 ‘살멱’으로 서로 반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우리의 ‘일부러’를 북한에서는 ‘우정’이라는 말로 쓰고, ‘서명 또는 싸인’은 ‘수표’라고 한다. 탈북자들이 말한 ‘우정’을 친구간의 우정이란 말로 듣거나, ‘수표’를 은행의 자기앞 수표로 생각한 나머지 의미 연결이 전혀 안돼 한참을 멍하게 있은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말 중간 중간에 외래어를 섞어 쓰곤 하지만 탈북자들은 순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마치 갓난아기의 해맑은 미소를 보듯이 깜찍하고 흐뭇한 느낌이 든다. ‘밥가마(가마솥)’, ‘얼음보송이(아이스크림)’, ‘살결물(화장품 스킨)’, ‘살짝공(배구 연타)’, ‘색동다리(무지개)’ 등이 그것이다.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의미가 다른 것이 많다. 우리는 말이 통하는 것 같고 그들이 알아들었을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그들에게는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외래어가 너무 많다. 쉬운 말로 표현해주고 친절하게 되물어 이해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들은 또 물어보기가 미안해서, 때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알아들은 척 하고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그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우리가 외국에 유학 갔을 때 느낀 기분을 상기하면서 그들을 대한다면 금방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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