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 왜 첫눈이 오는 날 /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 아마 그건 /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
시인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란 시의 일부분이다. 눈이 내리는 풍경은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감정을 갖게 한다. 그런데 첫눈이 내리면 정부에서 첫눈을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로 지정하는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 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인구 70만 명의 작은 산악국가인 부탄의 이야기다. 부탄은 국민소득이 2,300달러에 불과하지만 2011년 유럽 신경제 재단(NEF)이 발표한 국가행복조사에서 143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이다. 이 조사에서 부탄 국민 100명 중 97명은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낭만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1972년 부탄은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철학을 국정운영목표로 설정했다. 부탄은 진보라는 것을 경제만이 아니라 비경제적인 요소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초점을 맞춘 전일적 접근을 하였다는 점이 놀랍다.
부탄은 이 목표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고 명명하고, 국민총생산(GNP)을 대신하는 새로운 후생지표로 삼았는데 이건 세계에서 최초의 일이다. 국가 예산의 27%를 무상교육과 복지를 위해 쓰고, 특히 무상의료를 헌법적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부탄은 소국이지만 자신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경제의 추구,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적인 행복을 동등하게 여길 줄 아는 지혜와 실천은 어떤 선진국도 감히 시도해 볼 수 없었던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세계사에 남겼다.
비인간적 경제모델과 죽음의 문화
인간의 탐욕에 맡겨진 시장경제는 생태계를 황폐화시켰고 전통적인 공동체들이 사라지게 했으며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질수록 빈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삶의 안정성은 실종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구조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대량 생산해내고 약자들은 빈곤의 덫에 걸려 헤어날 길이 없다.
온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인간의 탐욕을 끊임없이 부채질하면서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2011년 청년들이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 미국의 경제 불안과 부조리에 항의하기 위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외쳤고 이후 이들의 외침은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온 세계로 번져나갔다.
미국의 저력이라고 여겨졌던 정직과 신뢰는 사라졌다. 금융위기의 뇌관이었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실상은 신뢰의 붕괴와 도덕적 해이가 불러온 것이다. 한때 가장 부유했던 미국의 사회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은 형편없이 망가졌다. 빈번한 총기 사건으로 무고한 인명들이 살해되다 보니 급기야 조지아 주 하원은 2013년 대학 캠퍼스와 교회에서 성인의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초강대국이지만 더 이상 선진국은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독재를 규탄하고 있으며 이런 비인간적 경제모델이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혁명이다. 무엇보다 이 혁명은 현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이다. 이제 세계는 행복에 기반 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한 바오로처럼,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이것이 종교가 풍요 속에서도 빈곤을 느끼는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청복(淸福)이 아닐까?
문영석 교수는 현재 강남대 국제학대학 학장이자,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토머스머튼연구회 회장, 신학과사상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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