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의 삶은 2011년 3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날 일어난 후쿠시마(福島) 핵발전소 사고가 분수령이다. 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로 알려진 체르노빌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후쿠시마 사고의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피폭으로 인한 질병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발생 4년이 다 돼가지만, 사고 수습은커녕 매일같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누출되고 있는 현실은 핵이 인류를 얼마나 큰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주변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 요오드 131, 세슘 137 등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이 1㎡ 당 200만베크렐에 달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퍼지기 시작한 방사성 물질은 대기를 타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퍼졌다. 핵발전소 1기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대기 중 방사능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 131이 검출됐고,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슈바르츠발트 흑림지대와 아이슬란드 등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나왔다.
기준치 이하면 안전하다?
‘지옥의 왕’ ‘지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2만4000년에 이른다. 단 1g으로 5만 명을 폐암에 걸리게 할 정도로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 인류에게는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관리할 방법이 없다. 한국을 위시해 핵에너지를 국가 에너지원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두고, 기준치 이하 피폭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동국대 의과대학 김익중(미생물학과·55) 교수는 “방사능은 피폭량에 정비례해 암을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또 “이것은 기준치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최대 허용기준을 정해 놓은 것은 과학적 판단이 아닌 행정적 결정일 뿐”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핵발전 과정에서 생기는 핵폐기물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또 100Kw급 핵발전소 1기가 1년에 내뿜는 방사선량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방사선의 1500배에 달한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핵발전소는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라늄 채굴부터 정제해 연료로 만드는 과정, 발전에 이용하고 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방사선에 피폭당하는 노동자가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일본의 상업 원전 가운데 처음으로 원자로 폐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東海) 원자로는 1998년 중단 이후 완전 폐쇄 시점은 23년이 지난 2021년으로 예정돼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처럼 건물이 날아가고 노심용해가 일어난 원자로들의 경우는 30년이 넘어갈 수 있다.
원자로 폐쇄에 드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하마오카 원전 1호기와 2호기의 폐쇄를 결정한 일본 주부(中部)전력은 1기 당 약 1000억 엔(약 1조350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1~6호기를 모두 폐쇄할 경우, 사고 원자로들이기 때문에 원자로 1기 당 훨씬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세계는 이미 탈핵으로
후쿠시마 사고는 핵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꿔놓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독일은 가장 먼저 핵발전소 폐쇄를 선언했다. 사고 직후 운테르베저 핵발전소 등 노후 발전소 가동을 중단했고,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스위스도 2034년까지 폐쇄하기로 하는 등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 포기와 기존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무심한 한국
최근 한국에서는 수명이 다한 노후 핵발전소 폐쇄 여부를 둘러싸고 핵발전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월성 1호기는 지난 1982년 11월 발전을 시작해 2012년 11월에 30년 설계수명이 다한 우리나라 최초의 중수로다. 중수로는 사고가 날 위험이 크고 특히 엄청난 양의 삼중수소를 배출한다는 이유 때문에 세계 핵산업계에서 더 이상 선택되지 않고 있다. 중수로 종주국인 캐나다조차도 구조적 결함과 잦은 사고로 더 이상 새로 건설하지 않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13년 9월 현재 운영 중인 중수로는 전 세계에 44기뿐이다. 이마저도 캐나다와 인도에 대부분이 있다.
월성 1호기는 방사능인 삼중수소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배출한다. 지난 2008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기체폐기물인 삼중수소 농도가 677.7테라베크렐로 우리나라 최고를 기록했고, 이는 영광 2호기의 91배나 된다. 액체폐기물인 삼중수소 농도 누적량도 월성 1호기가 348테라베크렐로 최고로 나타났으며, 고리 1호기의 15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엄청난 양의 삼중수소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 핵발전의 문제를 전해온 일본 탈핵운동 단체 ‘원전 안녕’ 아오야기 유키노부(靑柳 行信·가브리엘·69·후쿠오카교구) 후쿠오카 대표는 “핵발전의 이면에는 인간의 오만함과 거짓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아오야기 대표는 “편리하다, 싸다는 논리에 묻혀있는 핵발전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후대에 두고두고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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