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난, 그렇게 자랐다. 화목한 가정, 큰 다툼 없는 가정에서 무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다정한 아버지는 자동차 시트 커버 만드는 일을 하셨다. 아버지 손은 늘 재단용 초크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었고, 아버지 곁에는 ‘드르륵~ 드르륵~’하며 굉음을 내던 미싱(재봉틀)과 날카로운 칼날을 자랑했던 재단 가위가 함께했다.
성인이 된 어느날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이, “아버지는 왜 나를 단 한번도 시장에 데려가지 않으셨을까?” 하며 내게 물었다.
“설마, 단 한번도 데려가지 않으셨을까. 형이 기억을 못하는 것이겠지”
형과의 어린시절 회상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아버지께서 형제 둘 중 누구를 시장에 데려가셨던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결론은 형은 데려가지 않으셨단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형은 장손, 장남이기에 장사보다는 좀 더 괜찮은(?) 일을 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께서는 최소 매주 한 번은 천이나 가죽을 떼러 큰 원단 시장에 가셨다. 낡은 자전거였지만, 못 가는 곳이 없었고 뒷자리는 당연히 내 자리였다. 함께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자리잡아 있어서 인지… 형이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이 아직 거짓말 같다. 열심히 아버지와 세상구경을 다닌 때가 초등학교 입학 전 쯤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를 따라 나선 시장 구경은 동네에서만 놀던 내게는 세상구경이나 매한가지였다. 덜컹이는 자전거에서 혹시나 떨어질까 잡은 아버지의 허리춤은 늘 든든한 기둥과 같았다.
시장에 가면서 본 생소한 거리 풍경, 차를 타고는 갈 수 없는 골목길 등은 아버지께서 일부러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했던 기억들이 너무나도 많다. “애들은 가라”하며 이상한 약을 팔던 약장수, 서커스 공연 등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여러 추억을 남겨주셨던 것 같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생생한 것이 꼭 어제 일인듯 하다. 내게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꼭 한 번 돌아가고픈 그런 소중한 시간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꼬맹이었던 아들이 자식을 놓고 이리저리 사는 모습을 보시면 괜스레 농담이나 툭툭 던지시는 아버지. 그 농담 속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인 나만 느낄 수 있는 진실임 알고 있다. 나 또한 경상도 사람이라는 핑계로 무뚝뚝하게 지낸 시간이 무척이나 아쉽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건강한 모습의 아버지, 언제 하느님께로 가실지 모르기에 지금 이시간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한 발 다가서는 아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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