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그러면서 문득 그긴 겨울을 우리 모두 용케도 견디어 왔구나 하는 엉뚱한 상념에 사로 잡힌다. 반복되는 계절、그러면서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생동감은 다시 한번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삶을 생각케 해준다.
◆꿈속서 위대한 사회사업가?
철없이 어렸던 유년시절엔 그 희망이란게 철없고 어린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희망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고 티없이 순박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원하던 것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그만 울어버렸다. 누구나 경험한 이러한 몇 개의 추억들은 우리의 마음을 감미롭게 해주고 또한 깨끗하게 해준다. 또 다른 차원의 희망을 잉태케한다.
때때옷을 만지작거리며 섣달 그믐날 눈썹이 쉰다는데도 그만 잠을 못 이겼던일、성탄날 자정미사에 꼭 가려했는데 깨워주지 않았다고 할머니의 가슴을 치며 울어 버렸던일、배낭에 몇개의 과자봉지를 챙겨 두고 소풍날을 기다리며 잠못이루던 일、이러면서 사람들은 커갔고 또 다른 바람을 기다리면서 어른이 되어갔다. 그 어른의 희망이란 것이 가끔은 어릴 때의 그것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어 실소를 자아 내면서도 차라리 앳띤 맛이 있어 희망스러울 때가 있다. 복권 한장을 사두고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한 때가 있었다. 공상에 공상을 거듭했다.
너무 살 것이 많기도 했다. 물론 좋은일을 할 계획도 포함이되어 있었다. 성당 건립기금도 얼마쯤은 내야하고 등등、한참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듯 나는 당대의 위대한 사회사업가가 되어 버렸고 또 무엇 무엇도 하고 이것 저것도 해야 하고、복권이 몇백번 맞아도 그돈은 모자라게 마련이었다. 나중엔 그만 지쳐 잠이 들어버렸고 아침엔 일장춘몽에 그쳐 버린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십여시간의 이 바람은 나의 모두를 완전히 점령한 것이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의 삶을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다. 개인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러한 희망의 절실한 측면을 잃어버리고 살아 온지가 오래된 느낌이다. 무엇이 있어 감히 우리에게서 이 희망을 앗아 간단 말인가. 무엇이 있어 감히 사람에게서 이 바람의 조그만 즐거움마저 빼앗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것이 정부라면 이건 큰일이라도 이만 저만한 일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교회의 크고 작은 병폐에서 연유된 것이라면 이 또한 크게 잘못된 일이다.
만약 그것의 원인이 나스스로에게 있다면 나의 생활습관이、나의 신앙생활이 크게 잘못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앗아가는 일은 차라리 생명을 앗아가는 것에 뒤질바가 없는 일이다.
◆농민에겐 언제 희망돌려주나
작년에 학교 농장에서 배추농사를 지었다. 처음엔 한포기에 육백원은 받을거라 했다. 아주 큰희망에 부풀었었다. 오백원은 받을거라 했다. 그래도 곱하기의 계산에서 우리의 기대는 부풀기만 했다. 추수땐 단돈 백원을、그것도 밭뙈기로 농사를 마감 했었다. 몇년전엔 양파농사가 그러했고 고추농사가 더 다르지를 않았다. 돼지값이 주기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 일이고 요즘엔 소값이 또 떨어지기 시작했다. 농사공부를 하는 입장이라 이러한 현실을 더욱 절실하게 실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에 공헌치 못하는 답답하고 죄스러움이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일이 반복되면 농민에게서 희망을 앗아가는 일이 된다. 답답해지고 억울해지고 생의 의욕이 없어지고 피로해질 수 밖에 없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정부에선 이천년대 선진조국의 청사진을 밝힌바 있다.
비록 어린시절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과 6ㆍ25의 참변을 겪은 세대로선 벅찬 감회를 느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서 싹터 오르는 희망의 젖줄이 우리사회에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는 정책을、누구에게나 본질적으로 주어져있는 희망에 따라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는 창조의 세계가 가능한 정책이 그 청사진에 포함되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만약 이러한 일이 정부의 소관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벌써 했어야만 할일인 것같다.
◆사람은 하늘 向하게 마련
새봄이 왔다. 봄에 씨앗을 심으면 파란 새싹이 돋아난다. 새로운 희망의 새순이 하늘을 향한다. 가지를 굽혀 삽목을 해도 새순은 땅속을 용케도 한바퀴 돌아 하늘을 향한다. 사람의 삶을 염두에 두고 나는 이러한 현상을 식물의 상향성이라 이름한다. 성악설이 있긴하지만 사람은 본시 하늘을 향하게 마련이다. 소값이 떨어져도 소는 키워 나갈 것이다. 올해 배추값이 또 밭뙈기로 곤두박질을 처더라도 김장을 하려면 배추농사는 또 지어야할 것이다.
조그만 희망만 허락이 된다면 또 스스로 복잡한 현대를 핑계삼아 우리의 가슴속에 싹터 오르는 희망의 새순을 꺾어 버리지만 않는다면 비록 때때옷을 기다리던 어린시절의 즐거움 일지라도 그것을 선사해야 할 사람은 정부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요 바로 우리들 스스로 일수 밖에 없다. 그삶의 조그만 기쁨마저 그 삶의 희망마저 앗아버리는 일만은 누구도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서영석
<영남대학교농축 산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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