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하나라면 말도 하지 않는다. 같은 고향 같은 동창 같은 형제이니 자그마치 뿌리가 세개나 된다. 전주북중 전주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하느님 안에 한 형제로 뭉친 가톨릭신자들의 공동체가 있다. 이름을「숲정회」라고 붙였다. 숲정이는 지금의 전주 해성중고교 자리이고 조선왕조때의 사형터다. 이곳에서의 순교자 중 일곱분이 성인(聖人)이 되셨고 그 유명한 동정녀 이루갈따가 순교한 성지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會名을 짓게 된것이다.
가톨릭 신자 동창 모임을 갖자는 얘기는 나의 동기 몇 사람이 점심을 함께먹다 우연하게 나왔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참석기준은 본인이 가톨릭신자인 경우로 국한하지 않는다. 가족 중에 신자가 있으면 더 환영을 받는다. 부인과 자녀가 신자일 때 회원으로 초대되는 것이 특징이랄수 있다.
첫모임을 갖던 날 한 친구는 국민학교 때 소풍가기 전날 너무 기뻐서 잠을 설쳤듯 신자동창회 연락을 받고 간밤에는 잠을 못잤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며 본당을 잃고 냉담하는 사이 부인은 예배당에 나가게 됐더라고 한다. 남편의 하고 많은 모임중에 가톨릭 동창회라는데 그 부인은 퍽 호기심을 느꼈던것 같다.
『여보 그럼 그 모임에 나가는 걸 보니 성당에 등한하지 않을거죠? 저도 당신을 따르겠어요』이렇게해서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한마음이 되었으니 이것도 뿌리찾기의 하나가 아닐까. 숲정회 회원들은 모여서 마음을 활짝 열고 허심탄회하게 우정과 믿음을 다지는가하면 피정(避靜)을 통해 영적인 성숙과 공동체로서의 사랑을 더욱 깊게하고 있다.
지난 83년 9월 버스를 대절하여 전주로 성지순례 다녀왔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숲정이가 있는 해성중고교에 도착하니 그곳 신자동창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동문 사제 네분이 집전하는 그날의 주일 미사는 감격속의「떨림」그것이었다. 나의 동기동창 중에는 목사가 네명있다. 그러나 가톨릭신학대학에 진학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여느 인문고등학교의 추세도 그렇지만…그런데 이들 후배 사제들은 북중학교를 나와 성신고등학교를 거쳐 가톨릭신학대학에 진학했으므로 중학교 동창이 된다. 새 신부님 한분은『서울에서 오신 선배님들을 모시고 이앞에 서있으니 떨린다』고 표현했고 우리는 우리들대로 감회가 얼마나 깊었는지 모른다.
그날 동정부부가 묻히신 중바위에도 올라갔다. 유요한 이루갈따는 분명 한국 순교사의 꽃이랄 수 있다. 이들「이상한 부부」가 평생 동정을 지켜 마치 성요셉과 성모마리아의 관계와 같은 부부생활을 4년동안 계속했다함은 다 아는 일이다. 때로는 유혹에도 빠질뻔했지만 이를 이겨내면서 깨끗하게 살다가 신유박해(1801년)를 만났다고 순교사화는 전하고 있다. 안내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정부부의 방은 낮에는 뗏다가 밤에만 붙이는 장지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는 장지문 양쪽에서 제각기 묵주신공 드리는 기도소리만 낮게 들렸다고 합니다』
숲정회 회원들은 2~3개월마다 꼭 모여 피정을 가지며 모일때마다 새로운 선후배들이 만나고 있다. 숲정이에 뿌리내린 우정의 나무여! 무럭 무럭 자라거라.
李忠雨②<서울평협홍보분과위원장ㆍ일간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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