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위로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면 갖가지 질병의 환자가 입원한 3등실의 한 병실 창가에 기대서서 우두커니 창밖을 쳐다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아주 귀여운 4살박이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은 그는 악성피부 질환자였다.
입원초기에 갖가지 증상에 관심을 갖고 나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던 그는 얼마후 매사에 입을 다물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사지의 근육에 탄력을 잃어 침대도 오르내릴수 없었고 수저도 들 수 없었던 그가 조금 회복세를 보이자 성서를 펴들곤 했다.
좀 가벼운 병을 가진 환자들만 입원하는 그 병실엔 자주 눈이 안보이는 할아버지들이 입원했는데 그는 불안하게 휘청거리면서도 그런 분들을 부축해서 복도를 오가곤 했다. 하루는 눈이 안보여 걸을 수 없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러 5층부터 1층까지 다니는 것을 보고 그러지 못하게 나무랐더니『내가 지금 돕지 않으면 영영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할 수 없어요』라면서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같은병으로 재입원한 그는 직장을 잃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암」이란 자신의 병을 이미 알아차린 듯 감정마저 메말라 버린 이웃 환자들의 마음에 사랑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노인 환자들과 자주 얘기했고 전화다이얼을 돌려주고 대필 대변을 해주며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늦은밤 침대에 엎디어 두손을 모으고 있는 그를 볼때면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그동안 못마땅해 하고 원망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죄스런 마음에 용서를 청하곤 했다.
육체적 고통과 싸우며 언제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해야 할지 모르는 고통속에서도 그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의 고통은 소리치지 않으면서 사랑과 인정에서 소외된 노인환자들과 자신의 꺼져가는 육신의 작은 힘이나마 최대로 나누는 그는 진정 주님의 증거자이리라!
윤안나<대구시 서구 본리동 성당주공APT 113동 505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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