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방주의 창」의 집필 청탁 전화였다. 그러나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노아처럼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 생각대로라면 도대체 나같이 불감한 죄인에게는 끼어들 틈이 없을 구원의 방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방주는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말함이니 교회는 죄인들의 집단인게 분명하다.「방주의 창」은「나는 의인입네」하고 자기 주장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리이다.
내가 타게 될 방주는 얼마나 클까? 내 설계의 배가 작고 보면 그 오죽잖은 창으로 비친 세상이 별 수있으랴 생각하니 나의 글을 읽는 분들께 송구할 뿐이다. 오늘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써야겠다. 나는 산자의 이야기보다 죽어서 산 자의 이야기를、오늘의 일보다 어제의 일에서 살고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과거 완료형이 될 수 없는 것은 나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교훈인 까닭이다. 내가 자주 밟아 보는 땅은 험한 세월을 웃음으로 살았던 조상들의 고향이다. 나는 평족을 끌고 조상들이 살며 걷던 길、영생의 형장으로 걸어가던 길을 수없이 걸으며 님들의 체취에 아픈 줄을 몰랐다.
그리고 님들의 넋이 내 전신에 오르고 있거니 생각하며 감격에 뜨거웠다. 그 열기를 보온병에 담아 내삶의 영약으로 마시고 싶었다.
◆「안일무사주의」팽배
언젠가 나와 손발이 맞은 교수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세상에서 제일 편한 직업이 대학교수와 거지이지요. 이게 처음될 때가 어렵지 턱하니 자리만 잡으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는 겁니다』하고 겸양하던 이야기가 나에게는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실을 개탄하며 하는 말이、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의식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책임을 가진 주인의식」이 부족하다는 게 옳을 것이고 안일무사주의라고 표현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남에게는 길을 안내해주고 자신은 멀겋게 서있는 장승이아닌가.
◆청소년 비명은 병든 사회 반영
나는 청소년을 무서워한다. 그들은 굴절이 없는 정직한 마음과 신선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들의 노래는 그들의 마음의 소리요 위로요 친구이다. 그들이 사는 시대의 반영인 것이다.
나의 몇 해 동안 청소년이 애창하는 노래 중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고 과거완료로 끝나기를 바라는 접속곡이있다. 그것이「창밖의 여인」「미워 미워 미워」「못찾겠다 꾀꼬리」였다.
세상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머물러야 할 사랑이、배신당해 절망과 체념으로 변하면서 사랑을 애무하던 그 손길은 죽음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미움과 증오로 번졌다. 그것도 꼭꼭 씹어대는 미움과 증오였다. 그런 심정은 꿈을 상실한 현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꿈의 길조인 뻐꾸기는 먼곳으로 날아가 버린、미래와 희망을 잃은 공동묘지 같은 세상이었다.
청소년은 연약한 한 마리의 새와 같다. 새는 잠수함 속에서 공기가 약해지면 그것을 감지하고 소리내어 운다고 한다. 청소년의 우상인「작은 거인」은 각혈하 듯 흐느끼는 목소리、농축된 눈물을 삭히우는 혼신의 열창으로 청소년의 가슴을 흔들었다. 그들의 노래가 병든 목소리 병든 가사라고 하면、병든 사회에서 지르는 비명인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열창된 또 하나의 노래가 있다. 어느날 복스럽게 생긴 언니는 미래와 꿈을 주는 노래를 가지고 찢겨진 청소년들의 가슴에 찾아왔다. 그 노래는『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과 미래마저 허위였다. 그것은 권력에 기생한「큰손」의 장난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었다.
◆거짓말을 밥먹듯 해 온 어른들
청소년들은 절망이 아니면 이기심에 고삐풀린 망아지가 뛰노는 양극단의 사회를 어지럽게 오고 갔다.
나는 청소년들이 자기가 절망의 노래를 부르며 절망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모르는 안타까움에 괴로와한다. 내 생애의 값진 보배를 담아둔 문감의 열쇠를 넘겨줄 상속자가 그들이 아닌가.
어른들은 20여년 동안「늑대와 양치기소년」의 현실에서 교육하였다. 거짓을 정말처럼 외쳐대던 양치기 어른들의 허위에 속은 청소년들은 사실이 다가와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오늘의 청소년들이 생각이 없고 자기 논리가 없다고 말한다. 누가 그들에게서 줏대를 뽑아가고 분별력을 쓸어갔는가.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며사는 사람、고뇌하는 청소년은「문제아」로 지목되어 반갑지 않은 호수천사가 뒤따른것은 누구의 장난이더냐. 불건전하고 병든 세태는 고무하면서 건전한 주체성은 죄악시한 것은 누구였던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교육해야할 교회의 학교마저 입시경쟁의 현실에 굴복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분명히 불의의 현실에 공범자다. 나는 나이 어린 순교자와 그를 키워낸 가족이 그립다. 잔인한 신앙 제일주의 때문이 아니라 신념과 줏대있는 주체성이 위대한 것이다. 맹수가 자식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리며 키우듯 무섭도록 강인하게 키워야겠다. 그들을 온상에서 허약하게 키우지 않고 온갖 시련에서도 꿋꿋할 용기를 위하여 기도해야겠다.
김진소 <안드레아>
△충남서산生(1940년8월30일)
△사제서품(1972년7월15일)
△광주가톨릭大교수역임
△한국교회사연구소 총무겸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