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성서를 가르쳐주고 있는 수사님은『기왕 장가를 안들바에는 신부가 되지 왜 수사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는 마음먹기 따라서는 사제서품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장가 들자는데도 있지만「어쩔수없이」택한 길을 걷고있다고 했다. 어쩔수 없다함은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한 작은 응답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피정이나 친교모임을 통한 다른 형제들의 신앙고백에서 믿음을 갖게된 계기가 결코 우연치않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처음엔 제발로 찾아간줄알았더니 나중에사 주님의 계획임을 깨달았고 불러주시는 섭리가 오묘했다는 고백 등이 그것이다. 영화「나자렛 예수」의 감독으로 너무나 유명한 프랑코 제피렐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가 완성된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볼 때 이 영화의 예수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일종의 공모된 사건들이 내 생애의 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내가 이런식으로 부르고 싶어하는 것은 나의 교만이나 허영심에 유혹되어서가 아니라 어떤 신비스런 섭리를 믿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80년 9월부터 그해 말까지 한국일보 문화면 기획시리즈로「한국의 성지(聖地)」순례기를 썼고 그 연재 도중 스스로 성당을 찾아간 일을 은총으로 여기고있다.
연재했던 기사를 다시 정리하고 보충하여 책이 되기 까지 일들이 어쩌면 공모된 사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감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일을 내가 결정한 줄알지만 사실은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의 입을 통해 말했듯이『실존의 베일 속으로 바람을 일으킨 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고 싶다. 특히 출판사측에서 감독이 영화 제작과 신자가 되었듯이 성지순례를 하기로 입교한 점을 비교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싫지 않은 과분이다.
육당 최남선은 그의 입교기에 쓰기를 우리 민족의 정신 생활사를 검토해 볼 때 과서 수천년간 빛난 시기가 두번 있었는데 앞서서는 신라시대에 찬연히 발현된 화랑도요、가깝게는 서양문화가 들어올 때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정신이라고 했다. 화랑도는 진작 삼국통일이란 성과를 보였거니와 순교정신은 이를 받들고 가꾸기에 따라서는 얼마만한 공헌을 이룰지는 미지수이다.
서양문화는 단순한 물질과 의욕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 기반 위에서 가톨릭이라는 확고한 진리의 힘이 있다함은 역사가 증명한 대로다. 우리나라 근대 문화사의 역사적 현장도 가톨릭 순교사의 부분이 점철됐으리라는 것을 짐작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선조들의 진리탐구 정신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순교자들의 열정에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또 어깨가 으쓱할 정도로 긍지도 느꼈다. 늘 비하(卑下)하고 부끄러워해 마지않던 조선땅 위에서 의롭고 자랑할 조상을 가졌다는 뿌듯함이 순교자에 관한 기록을 찾아 읽고 그 후손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승화됐는지도 모른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순례의 발길과 취재기록들이 잊혀지기 쉬운 이땅의 순교정신을 되새기고 주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작은 응답이 될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끝)
<서울평협홍보분과위원장ㆍ일간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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